신흥국 채권시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과 중국 경제의 경착륙 불안감,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서방국가와 러시아의 갈등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앞다퉈 신흥국 채권시장에서 돈을 빼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투자 위험은 크지만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성장했던 신흥국 채권시장이 한순간에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자금, 신흥국 채권시장 떠난다
투자금 썰물…반토막 난 수익률

20일 시장 조사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에 따르면 신흥국 회사채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올 들어 3개월 연속 투자금이 순유출됐다. 신흥국 회사채 시장에서 빠져나간 글로벌 투자금만 총 5억5600만달러(약 6030억원)다. 한때 두 자릿수에 달했던 투자수익률은 올 들어 4.3%로 떨어졌다.

신흥국 회사채 금리도 가파르게 뛰고 있다. 작년 평균 연 5.98%였던 브라질 기업의 회사채 금리는 이날 연 6.81%까지 올랐다. 우크라이나 기업의 회사채 금리는 같은 기간 연 14%에서 연 29%로 두 배 이상 치솟았다. 회사채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저금리에 싼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 수요가 맞물려 신흥국 회사채 시장은 호황을 누려왔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를 포함해 주요 통화로 발행된 신흥국 회사채 규모는 두 배 이상 늘었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작년 신흥국 기업(금융회사 제외)이 발행한 회사채는 신흥국 국내총생산(GDP)의 83%에 달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JP모간에 따르면 2009년 이후 투자자들이 신흥국 회사채에 투자해 거둔 누적수익률은 11.1%다.

“올해 디폴트 가능성 높아질 것”

최근 신흥국 채권시장 투자 열기가 빠르게 식고 있는 것은 연내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미 달러화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신흥국 통화가 유례없는 약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1년 전에 비해 30% 이상 떨어졌다.

실제 신흥국 일부 기업의 회사채가 디폴트에 빠지면서 글로벌 투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1월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 카이사는 달러화 표시 회사채 5억달러의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경제난으로 기업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올 1분기 신용등급이 떨어진 신흥국 회사채가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총 132개라며 올해 디폴트 비중 역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형은행 유동성 규제도 변수

‘신(新)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군드라흐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채권시장의 위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며, 뇌관은 신흥국 회사채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2018년부터 금융당국이 대형 은행에 대한 유동성 규제를 강화할 예정이라 그 전에 대형 은행이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낮은 신흥국 회사채를 처분하려는 것도 변수”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부진한 기업 투자로 중국 경제의 둔화세가 뚜렷해지고,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이 또다시 증폭되는 것도 신흥국 회사채의 상환 능력에 대한 투자자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다만 신용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이 높은 한국 채권시장은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돼 해외 투자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올 들어서만 1조7000억원이 순유입됐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