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 라이프] "재고는 죄(罪)…하나가 팔리면, 하나를 만들어라"
2004년 12월 독일 쿤츠에 있는 볼보건설기계 굴삭기 공장에서 한국인과 독일인의 언쟁이 벌어졌다. 한국인은 “현재 공장은 생산효율이 떨어지니 모두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독일인은 “지금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항변했다. 언쟁은 “창원공장 시스템을 독일에 도입해야 한다”는 발언에 더욱 격화됐다. 기계 분야에서 남다른 자존심을 지닌 독일 기술자들에게 한국 공장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납득시키는 일은 힘들었다.

설득은 1년 넘게 이어졌다. 쿤츠 공장은 결국 창원공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생산성이 40% 이상 향상했다. 쿤츠공장은 감사의 뜻으로 정문에 태극기를 달았다. 아직도 쿤츠공장에는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공장을 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독일 공장 관계자를 설득한 한국인이 바로 석위수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사장(65·당시 볼보건설기계 굴삭기사업부문 글로벌생산총괄 부사장)이다.

“재고는 죄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석 사장이 독일 공장 직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스템 교체를 주장한 것은 생산성이 결국 회사를 키우고, 직원들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지론 때문이다. 그는 직원을 만날 때마다 “생산성이 나아지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고용이 안정되고, 근무 환경이 개선된다”고 말했다. 석 사장은 창원공장 시스템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이다.

창원공장 시스템의 핵심은 ‘하나가 팔리면, 하나를 만든다(Sold one, make one)’이다.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석 사장은 평소 “재고는 ‘죄(罪)고’다”는 말로 재고 최소화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부품준비를 생산일정에 맞추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한 라인에서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는 것도 창원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다. 볼보건설기계가 생산하는 품종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라인에서 하나의 모델만 생산하다가는 속도가 갈수록 늦어진다는 게 볼보 관계자의 설명이다.

창원공장 시스템은 볼보그룹의 표준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볼보는 2010년 볼보생산시스템(VPS)을 개발했는데, 이는 창원공장 시스템과 거의 비슷했다. 창원공장은 2012~2013년 세계 볼보 공장 64개 가운데 생산성 평가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이후에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볼보건설기계는 지난해 약 180억원을 투자해 합천시험개발센터를 출범시켰다. 시험개발센터에서는 개발 중인 장비를 여러 조건 속에서 시험할 수 있다. 창원공장 가까이 연구개발(R&D) 관련 핵심시설을 둔 것은 창원공장이 볼보건설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창원공장은 완성품 매출의 35%를 책임진다.

최고경영자가 앞장서야 직원도 따라와

석 사장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원 개개인의 노력이 필수적이고, 이를 이끌어내려면 최고경영자(CEO)가 앞장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CEO가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직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석 사장의 생각이다.

석 사장은 특히 현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려고 한다. 경영상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는 일선 현장에서 일어나고 그 해결책도 현장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볼보건설기계 굴삭기사업부문 글로벌생산총괄 부사장(2004~2008년)으로 일할 때 매월 첫 1주일은 창원 공장에서, 다음 1주일은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그 다음 1주일은 독일 콘츠 공장에서, 마지막 1주일은 미국 애슈빌 공장에서 일했다.

2009년 볼보건설기계 아시아 오퍼레이션 총괄 사장을 맡은 뒤에는 아시아 공장을 순회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석 사장은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현장의 문제를 소홀히 다루면 장래에 돌이킬 수 없는 경영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했다.

석 사장은 CEO가 되기 전부터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직원들에게 “노력하면 어떤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그가 세운 첫 목표는 ‘월중고대’다. 그가 다녔던 월항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졸업하겠다는 목표를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는 ‘월중고대’라는 목표를 이루기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당장 부모님부터 그의 고등학교 진학을 반대했다. 집에서 농사 짓기를 바란 것이다. 석 사장은 부모님에게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응시해보고, 만약 떨어지면 농사를 짓겠다고 약속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그해 4월 다시 부모님을 설득해 고향에 있는 농업고등학교(성주농업고)에 진학했다. 대학교 입학도 만만치 않은 난관이었다. 공과대학을 가고 싶었던 그는 입시과목을 혼자 공부했다. 입학 후에도 달라질 건 없었다. 집안 형편이 학비를 대줄 만큼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 사장은 5년 동안 입주 가정교사 일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시간이 나면 책을 펼쳤다. “군대에서 왜 공부를 하느냐”며 괴롭히던 고참들도 두 손 들었다.

직장생활에서도 그의 성격은 그대로 드러났다. 1998년 자신이 몸담았던 삼성중공업 중장비부문이 글로벌 기업인 볼보에 인수되자 50세를 목전에 둔 그는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매일 밤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주말도 고스란히 영어 공부에 바쳤다. 대학을 다니던 아들과 단어 외우기 경쟁도 했다. 5년이 지나자 그룹 내 누구와도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삼성중공업에 입사한 이후 공장장을 꿈꾸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일화도 유명하다. 과장 시절 공장장이 여러 차례 문제점을 지적하며 결재를 거부하자, “나도 다음에 공장장을 할 사람인데, 내가 하면 그렇게 부하직원 애를 먹이지 않겠다”고 반박했다. 공장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내가 3대 공장장인데, 너는 언제 공장장 할 것 같냐”고 묻자, 석 사장은 “7대 공장장쯤 하면 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석 사장은 그의 말대로 삼성중공업 7대 공장장이 됐다.

석 사장은 “당시 공장장이 임원진 회의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내 얘기를 전했고, 주변에서 모두가 내 목표를 알게 됐다”며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공장장에 걸맞은 역량과 태도를 갖추고 있는지 매일 점검하고 다듬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표와 다짐을 벽에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웃음거리가 안 되기 위해서라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정진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 석위수 사장 프로필

△1950년 경북 성주 출생 △1968년 성주농업고 졸업 △1975년 고려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5년 대한석유공사 입사 △1976년 삼성중공업 입사 △1998년 삼성중공업 이사 △1998년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생산담당 이사 △1999년 볼보건설기계 창원공장 공장장(부사장) △2004년 볼보건설기계 굴삭기사업부문 글로벌생산총괄 부사장 △2009년 볼보그룹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겸 볼보건설기계 아시아오퍼레이션 총괄사장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