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감염 의사' 격리 통보 받고도 서울시내 활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증상이 나타난 상태로 서울 도심에서 1565명이 참가한 아파트 재건축조합 총회와 의사 심포지엄 등에 참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심 한복판에서 메르스 방역이 뚫린 것으로, 지역 사회에 전파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증상 나타난 채로 도심 활보

박원순 서울시장은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지난달 30일 1565명이 모인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총회 참석자 명단을 확보해 자발적 자택격리 조치를 요청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서울의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이 의사는 지난 1일 확진 판정을 받은 35번째 환자로, 14번 환자와 같은 응급실에 있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환자는 지난달 29일부터 경미한 증상이 시작됐고, 다음날인 30일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그럼에도 이 환자는 같은 날 오전 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한 뒤 저녁 때 가족들과 가든파이브에서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오후 7시부터는 양재동 L타워에서 1565명이 모인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했다.

이 의사는 31일부터 기침과 가래 및 고열이 발생했고, 이날 오전 병원 대강당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몸이 안 좋아 귀가한 뒤 늦은 밤부터 병원에 격리됐다. 이틀 동안 이 의사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만 재건축조합 참석자 1565명에 이른다. 박 시장은 “이 35번 환자는 이틀 동안 여러 곳에서 동선이 확인됐고 그만큼 전파 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 1565명의 명단을 확보했고, 이들에게 자발적 자택격리 조치를 요청할 방침이다. 박 시장은 “1565명 위험군 전원에 대해 잠복기 동안 외부 출입이 강제적으로 제한되는 자택격리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방역당국이 환자 방치”

서울시는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이틀 동안 도심을 돌아다니는데도 방역당국이 이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이런 사실을 지난 3일 오후 서울시 담당 공무원이 보건복지부 주관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인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이 같은 사실을 시민들에게 공표하고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35번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고 이후 동선은 물론 1565명의 재건축조합 행사 참석자들 명단도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며 “복지부 측에서 재건축조합 행사 참석자들에게 수동감시를 하겠다는 의견을 시로 보내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더 이상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메르스 방역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앞으로 서울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35번 환자가 참가한 모임 성격상 긴밀한 접촉이 아니어서 대규모 인원에 대한 격리 조치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가족 등 밀접 접촉자 52명에 대해 격리 조치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3일 서울시 및 강남구청과 관련 내용에 대한 정보를 이미 공유했다고 덧붙였다.

강경민/고은이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