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그리스 전철 밟자는 '사회적 경제 법안'
한국이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경제 법안’ 때문이다. 지금 세 개의 사회적 경제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야당 의원들은 ‘사회적 경제 기업을 위한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했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여야가 사회적 경제 법안을 내세우는 이유는 매우 아름답다.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내년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경쟁적인 포퓰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를 빼닮았다.

199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사회당으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은 신민당은 사회당 집권기간에 과다한 복지정책으로 망가졌던 경제를 개혁하기보다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대응했다. 복지를 줄이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민당은 노동조합과 결탁하고 지지자들을 공무원으로 고용하거나 지지한 집단을 위해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와 법을 제정했다. 그 후 두 정당은 경쟁적으로 복지 포퓰리즘 정책들을 제공해 오늘날 위기의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동체 정신은 중요하다. 강한 공동체 정신은 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동체 정신이 정부가 육성한다고 해서 형성되고 강해지겠냐는 것이다. 공동체 정신은 개인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운동에 의해 이뤄질 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다. 그래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활동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들은 의미가 있으며 이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이런 사회적 경제 조직을 지원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정부가 공동체 정신을 함양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경제 조직을 육성·지원한다면 오히려 공동체 정신이 훼손될 것이다.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게 되면 이제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전투구가 심해질 것이다. 그에 따라 공동체 형성의 기초인 자발성이 훼손될 것이며, 그리스가 겪고 있는 것처럼 정부의 지원에 연명하는 ‘좀비기업’ ‘좀비조직’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육성과 지원 과정에서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가 발생할 것이다. 자연히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사회적 경제 법안이 내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양극화 문제 해소다. 사실 양극화 문제는 자유 시장경제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개입한 경제시스템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부(富)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으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을 만족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부의 주인이 수시로 바뀐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정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한 간섭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권력을 잡고 있는 그룹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만이 잘살고 나머지는 못산다. 이것은 옛 소련 및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 그리스와 같은 국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어느 나라나 가난한 사람은 있다. 한국에도 소년소녀가장, 무의탁 홀몸노인, 중증 장애인 등 정말 혼자 힘으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건실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일이지,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의 격언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된 사회적 경제 법안은 우리 경제에 독이 될 것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공포’로 온 나라가 마비돼 있다. 이 와중에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중차대한 사회적 경제 법안이 덜컥 국회에서 통과라도 된다면, 정말 아찔하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