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장·전시 기획도 수출 시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을 맡은 이용우 세계비엔날레 초대 회장(63)은 최근 중국 젠다이그룹이 운영하는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으로 영입됐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다이지캉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재단 이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미술기획 전문가인 이 관장은 히말라야미술관이 주도하는 프리(pre)비엔날레 형태의 ‘2016 상하이 프로젝트’를 지휘하게 된다.

이 관장을 비롯해 김선정 김용대 정도련 정준모 윤재갑 씨 등 ‘미술기획의 마술사’로 통하는 큐레이터들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미술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세계적인 큐레이터들과 미술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 이들은 국제적으로 미술계 인맥이 두터운 데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참신한 기획 아이디어로 새로운 미술 경향을 선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베니스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행사부터 소규모 미술축제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새로운 트렌드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지낸 윤재갑 씨(47)는 한국인으로는 처음 해외 사립미술관장으로 발탁됐다. 중국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대안공간과 상업화랑을 두루 경험한 윤씨는 아시아 현대미술 컬렉터로 유명한 호텔재벌 쩡하오 완허그룹 회장이 2013년 설립한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의 사령탑을 맡았다. 윤씨는 그동안 국내외 하이엔드(최첨단) 미술을 소개하며 ‘미술기획 한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부큐레이터를 지낸 정도련 씨(42)는 최근 홍콩 시주룽문화지구에 들어설 초대형 박물관 엠플러스의 수석 큐레이터로 자리를 옮겨 컬렉션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2018년 완공될 엠플러스는 시각예술, 건축디자인, 동영상이미지 등 세 카테고리에 20세기 이후 작품 3000여점을 모을 예정이다.

미술 전시기획을 해외에 수출하는 큐레이터도 줄을 잇고 있다. 독립 큐레이터 김선정 씨(50)는 오는 12월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대만 홍콩에서 ‘불협화음의 하모니’전을 열 예정이다. 한국미술을 해외 무대에 소개한 그는 이번 행사에 전자음악가 권병준, 미술가 구정아와 김소라 씨 등 한국 작가를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작가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씨는 내년 3월 모리미술관 기획전 ‘롯폰기 클로싱’과 5월 프랑스 마르세유 아트엑스포 전시회 기획에도 나선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58)은 지난해 해외 한국문화원 패키지프로그램 순회사업의 하나로 중국 독일 인도네시아 브라질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알렸고, 올해 말에는 폴란드 라즈니아아트센터에서 한국미술전을 열 계획이다. 내년에는 브라질 리우올림픽에 맞춰 상파울루에서 ‘한국미술의 정신성’이라는 주제로 대규모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미술평론가 김용대 씨(60)는 한국의 대표적 현대미술 장르인 단색화 수출에 앞장서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페로탱갤러리에서 한국의 단색화전을 기획한 데 이어 이달 말 같은 장소에서 정창섭 작품전을 준비 중이다.

2007년 10월 영국 테이트미술관에 입성한 이숙경 씨(46)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아 한국 미술을 완성도 있게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2010년에는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 ‘백남준 회고전’을 테이트 리버풀에서 열어 수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 전시공간에서 제대로 소개하는 큐레이터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국제 화단에는 매년 1000여개의 미술관이 건립되는 만큼 정부의 미술정책이 작가 지원에만 머물지 말고 기획자 지원에도 신경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