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 줘야 부실 없다] 국민 10명 중 4명 "콘텐츠 불법복제 해봤다"
한국에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SW)는 제값을 못 받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화나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가 최근 발간한 ‘2015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42.8%가 불법 복제물을 이용했다. 온라인을 통한 이용이 총 20억2400만개로 전체 불법 복제물 이용량의 90%를 차지했다. 불법 복제물 유통은 영화 음악 등 콘텐츠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 좋은 콘텐츠에 돈이 몰리고, 이 자금이 다시 고급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것. 지난해 불법 복제물로 인한 콘텐츠산업의 직간접적 생산 감소는 약 2조3000억원, 고용 손실은 약 2만8000명에 달했다.

SW산업도 제값 못 받기는 마찬가지다. 웹하드나 개인 간(P2P) 파일공유 서비스를 통해 배포되는 불법 복제 SW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소프트웨어연합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SW 불법 복제율은 38%로 미국(18%), 일본(19%), 영국(24%) 등 선진국보다 높다.

여기에 SW 용역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문화도 국내 SW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동안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중소 SW업체로부터 싼값에 SW를 구매한 뒤 무료 유지보수를 요구하는 등 불공정 거래가 관행처럼 퍼져 있었다. 여기에 SW개발 용역의 다단계 하도급이 겹치면서 국내 SW업계 종사자들은 근무시간은 길지만 박봉에 시달린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 등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제값주기’ 시범사업이 펼쳐지고 있지만 사회 전반에 퍼진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은 “SW는 아이디어 등 지식재산의 가치가 핵심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제조업처럼 제품 생산에 들어간 시간 등을 따지려 한다”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인수가 활발한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일이 만연한 것도 같은 맥락의 문제”라고 말했다.

박병종/추가영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