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칠에서 이젠 필사로…'힐링 독서'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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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마음필사'·김용택 '어쩌면 별들이…' 등 서점가 인기몰이
좋은 문장 따라 쓰는 '참여형 독서' 치유 효과…필사 모임도 생겨
좋은 문장 따라 쓰는 '참여형 독서' 치유 효과…필사 모임도 생겨
지난해 출판시장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책은 ‘컬러링북’이었다. 글씨 하나 없이 밑그림만 있는 ‘책 아닌 책’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비결은 스트레스 감소였다. 마음에 드는 색연필이나 펜을 골라 밑그림대로 그림을 그리면 잠깐이나마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사용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컬러링북으로 만들어진 참여형 독서문화가 올 상반기엔 필사로 이어지고 있다. 답답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좋은 글을 읽고 따라 써보는 일거양득의 효과로 필사 붐이 일고 있는 것.
최근 출간된 고두현 시인의 《마음필사》(토트)는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한 책이다. 책 속엔 시와 산문 등 91편의 작품에서 고른 명문장이 담겨 있다. 필사가 좋은 글을 베끼는 행위이긴 하지만 빼곡한 글씨를 무작정 옮기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적절히 여백을 두며 편집한 것이 매력이다. 가로나 세로로 쓸 수 있고 아무 곳에서 쓸 수 있도록 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고 시인은 “필사에서 중요한 건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새”라며 “시인이 쉼표를 찍었으면 그 대목에서 쉬고, 말줄임표를 남겼으면 그 말 없는 여백을 느끼면 된다”고 필사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한 장 한 장 글씨를 담아 페이지를 넘기면 마음을 풀어주는 20여장의 사진도 만날 수 있다. 김난희 토트 주간은 “책을 낼 때 책등을 얇게 하고 특별한 풀을 써서 글씨를 쓰는 데 적합하게 만들었다”며 “종이도 여러 번의 시험을 거쳐 만년필로 써도 번지거나 비치지 않는 것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김 주간은 “벌써 필사를 사랑하는 모임이 생기고 기업 단체 주문까지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택 시인도 ‘꼭 한 번은 써보고 싶은 시’를 주제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를 펴냈다. 감성치유 라이팅북을 표방한 이 책은 김소월, 이육사, 백석 같은 20세기 시인들은 물론 김혜순, 황지우, 천양희, 이성복 등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시 111편을 담았다. ‘섬진강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김 시인의 시 10편도 있다. 김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시인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헤매는 우리 마음을 시가 잡아줄지도 모른다”며 “독자들이 꼭 한 번은 따라 써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골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필사 책은 단순히 글씨를 베껴 쓰는 것을 넘어 작가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일치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내면을 발전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 컬러링북이 생각을 멈춤으로써 치유를 추구한 것처럼 필사 책은 생각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깊이를 더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점들도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삼환재에 마련된 ‘필사의 맛’ 코너에서는 그동안 출간된 다양한 필사 책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문구체인 핫트랙스 영등포점, 부산점 등에선 만년필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3000~5만원 사이의 입문용 만년필 코너를 따로 준비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필사를 “생각의 격조와 문장의 격조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훈련법”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글을 따라 쓰면 글에 적힌 내용을 숙지하며 교양을 쌓을 수 있고, 그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을 익혀 글솜씨가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시뿐만 아니라 고전 산문도 필사 교재로 추천했다. 장 대표는 “필사는 좋은 문장을 자기 몸에 새기는 행위”라며 “다만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그 문장을 이겨내 더 좋은 문장을 만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최근 출간된 고두현 시인의 《마음필사》(토트)는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한 책이다. 책 속엔 시와 산문 등 91편의 작품에서 고른 명문장이 담겨 있다. 필사가 좋은 글을 베끼는 행위이긴 하지만 빼곡한 글씨를 무작정 옮기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적절히 여백을 두며 편집한 것이 매력이다. 가로나 세로로 쓸 수 있고 아무 곳에서 쓸 수 있도록 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고 시인은 “필사에서 중요한 건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새”라며 “시인이 쉼표를 찍었으면 그 대목에서 쉬고, 말줄임표를 남겼으면 그 말 없는 여백을 느끼면 된다”고 필사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한 장 한 장 글씨를 담아 페이지를 넘기면 마음을 풀어주는 20여장의 사진도 만날 수 있다. 김난희 토트 주간은 “책을 낼 때 책등을 얇게 하고 특별한 풀을 써서 글씨를 쓰는 데 적합하게 만들었다”며 “종이도 여러 번의 시험을 거쳐 만년필로 써도 번지거나 비치지 않는 것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김 주간은 “벌써 필사를 사랑하는 모임이 생기고 기업 단체 주문까지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택 시인도 ‘꼭 한 번은 써보고 싶은 시’를 주제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를 펴냈다. 감성치유 라이팅북을 표방한 이 책은 김소월, 이육사, 백석 같은 20세기 시인들은 물론 김혜순, 황지우, 천양희, 이성복 등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시 111편을 담았다. ‘섬진강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김 시인의 시 10편도 있다. 김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시인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헤매는 우리 마음을 시가 잡아줄지도 모른다”며 “독자들이 꼭 한 번은 따라 써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골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필사 책은 단순히 글씨를 베껴 쓰는 것을 넘어 작가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일치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내면을 발전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 컬러링북이 생각을 멈춤으로써 치유를 추구한 것처럼 필사 책은 생각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깊이를 더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점들도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삼환재에 마련된 ‘필사의 맛’ 코너에서는 그동안 출간된 다양한 필사 책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문구체인 핫트랙스 영등포점, 부산점 등에선 만년필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3000~5만원 사이의 입문용 만년필 코너를 따로 준비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필사를 “생각의 격조와 문장의 격조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훈련법”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글을 따라 쓰면 글에 적힌 내용을 숙지하며 교양을 쌓을 수 있고, 그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을 익혀 글솜씨가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시뿐만 아니라 고전 산문도 필사 교재로 추천했다. 장 대표는 “필사는 좋은 문장을 자기 몸에 새기는 행위”라며 “다만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그 문장을 이겨내 더 좋은 문장을 만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