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이기석 마술사 "비보이 못지않은 세계무대 한국마술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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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보다 '모험생'이 각광받는 시대"
☞ 세계마술올림픽 우승 도전하는 '마술청춘' 스토리
[ 김봉구 기자 ] “한국 마술의 역사가 길지는 않아요. 세계마술올림픽이라고 불리는 피즘(FISM) 역사가 70년 가까이 됐는데요. 2003년 대회에 이은결 마술사가 출전했을 때 ‘어, 한국에서도 나와?’ 이런 반응이었죠. 그때 이후 한국 마술사들이 많이 출전해 상도 곧잘 받고 있어요. 6~7년 전 세계대회를 휩쓴 한국 비보이(B-boy) 열풍이 마술 쪽에서도 재연되는 분위기입니다.”
오는 6~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피즘2015 우승에 도전하는 ‘루카스’ 이기석 마술사(사진)의 설명이다. 주종목은 매니플레이션. 손기술로만 정면승부하는 인기 마술 분야라고 귀띔했다.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주목받은 이은결 마술사가 2003년 대회 매니플레이션 부문에 출전해 준우승한 적 있다. 지난 대회(2012년) 준우승을 차지한 이기석 마술사 스스로에겐 세계 정상을 향한 재도전 무대다.
사실 그의 마술 인생은 쉽지 않았다. 고교시절 봉사활동으로 마술을 배웠다. 마술이 좋아 어깨너머로 틈틈이 익혔다. 학교엔 마술동아리가 없어 직접 만들기도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쪽을 전공하면서도 취미로 마술을 계속하다 진로를 틀었다. 2006년 전문대(동아인재대) 마술학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술을 시작했다. 당시 전국에서 유일했던 마술학과였다.
그는 “마술이 너무 좋았다. 젊을 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인정받기 위해 미친 듯이 연습했다”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까 대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언제부터 마술에 관심을 가졌는지.
“원래 컴퓨터 쪽을 전공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했다. 대학도 처음부터 전문대 마술학과에 진학한 건 아니었다. 다른 대학에 갔다가 전향한 거다. 고교 때 봉사활동이 마술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마술을 정말 해보고 싶어서 마술학원 다닌 형을 졸라 배웠다. 마술동아리도 직접 만들고. 마술은 좋아했지만 사실 마술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 마술을 직업으로 택하는 건 쉽지 않았을 듯한데.
“고교 때까진 취미이자 놀이 수준이었다. 대학에서도 전공은 따로 있었다. 문하생 형식으로 마술을 배우긴 했지만. 그런데 배울수록 마술에 대한 관심이 자꾸 커졌다. 자연히 다른 일엔 소홀해지더라. 전공 학점도 떨어지고. 두 마리 토끼는 못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할 거면 젊을 때 내가 좋아하는 마술에 제대로 도전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 주변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나.
“어릴 때부터 컴퓨터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교육도 많이 받았다. 부모님도 밀어줬고. 그런데 마술을 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부모님도 반대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마술을 택한 건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마술을 할 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여러 마술대회에서 수상하고 실적을 내면서 이젠 부모님도 날 인정하고 응원해준다.”
- 일찍 시작한 건 아닌데, 수상 실적을 보면 많이 노력한 것 같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 어느 쪽을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 같은 경우 그만큼 마술에 미쳐서 할 수 있었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웃음) 거의 매일 밤을 샜다. 그렇게 준비해서 대회에 계속 출전해 나름의 성적을 거뒀다. 부모님을 설득하려면 내 비전을 보여줘야 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지만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나이로 25살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그때까지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자, 이렇게. 사실 벌이는 형편없었다. 25~26살 때까지 한 달에 10만~20만원대를 벌었으니. 직업으로 계속하려면 좋아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정말 잘해야 한다, 그런 결론이 나오더라.”
-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는 거구나.
“마냥 좋아만 하면 곤란하다는 거다. 진화를 해야 한다. 사실 나도 어릴 땐 ‘부모님은 나를 몰라, 고지식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이 안정적 직업을 갖길 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 현실적으로 마술사가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니 반대한 거겠지.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있으니까 대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결국 스스로 노력해 성과를 보여주고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 주로 어떤 마술을 하는지 궁금하다.
“마술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 나는 주로 손기술 위주의 매니플레이션을 한다. 인기가 많은 마술 분야다. 피즘도 올림픽처럼 주종목이 있는데 이번 대회 매니플레이션에 출전한다. 내 경우엔 밝고 화려한 것보다는 슬픈 퍼포먼스를 주로 한다. 국내에선 좀 생소하지만 유럽 등 해외에선 마술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 편이라 그런 무대가 통한다.”
- 주로 해외에서 활동한다고 들었다. 문화 차이가 큰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우선 우리는 TV가 너무 재미있다. (웃음) 외국에서도 우리 TV 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나. 유럽 쪽은 TV보다 극장에 가 공연을 보는 문화가 발달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가 몸에 배었다고 할까. 그래선지 상대적으로 한국은 좀 더 자극적인 걸 찾는 분위기 같고. 유럽에선 마술을 예술 문화로 받아들인다.”
- 특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해외 관객 입장에선 대부분 내가 처음 접하는 한국인 마술사다. 젓가락질을 신기하게 보더라. 어릴 때부터 손기술을 연습해 한국인들이 마술을 잘하겠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피즘이 70년 정도 된 오래된 대회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으로 따지면 본선 진출도 못해본 셈이었다. 그런데 한국 출신 마술사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순식간에 성적을 냈다. 마술 선진국들이 많이 놀라고 있다. 몇 년 전 비보이들이 세계대회를 휩쓸었던 그때 분위기와 비슷하다.”
- 스스로 생각하는 마술은 어떤 것인가. 마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마술은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장르다. 그런데 사람이란 이렇다 혹은 저렇다, 단순하게 정의내리기 어렵다. 사람을 대하고 사람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것. 그렇게 보면 마술의 가장 큰 매력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때그때 다르고, 소통의 한 부분으로 마술이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마술을 공부하고 있다. 마술은 내 열정이 멈추지 않게 하는 장르다.”
- 전문대 진학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마술을 배우고 싶었던 게 가장 컸다. 당시 전국에 유일한 학과였으니 당연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세상은 모범생보다는 ‘모험생’이 각광받는 시대 아닌가. 거기에 걸맞는 게 전문대 같다. 목표가 뚜렷하고 시간도 짧으니까. 4년제는 모험을 하기엔 좀 길지 않나. 남자는 군대까지 6년여를 보내야 하는데 분명한 목표나 생각 없이 다니는 건 의미 없다고 느꼈다.”
- 전문대 진학을 권하는 이유는.
“확실한 건 그때 전문대란 이유로 안 갔다면 지금 불행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대부분 학생들이 자신을 잘 모르고 점수에 맞춰 진학한다. 대학이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목표의식을 갖고 다니려면 전문대가 좋지 않을까. 스스로 만족했고 주위에도 전문대 진학을 적극 권한다.” - 마술학과에선 어떤 걸 배웠는지.
“내가 다녔을 땐 초창기라 전공 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술 전공자 자체가 드물었던 때라 서로 소통하면서 배우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은 이론과 실기 양쪽 모두 인프라가 많이 보완됐다. 마술이 뜨니 멋모르고 도전하는 때도 지나가 어느정도 정착 단계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2012년부터 겸임교수로 강의하면서 후배들에게 무대 파트를 가르치고 있다.
후배 양성과 학문적 체계화가 개인적 목표다. 마술 DVD를 낸 적 있고 지금은 책도 쓰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마술을 많이 배워왔다. 앞으로는 다른 나라가 한국에서 배워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후배들, 제자들이 마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이 됐으면 한다.”
- 마술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마술은 결국 실력이다. 비유하면 김연아가 실력 때문에 인정받는 거지, 고려대 출신이라서 인정받는 건 아니지 않나. 진짜 신경 쓸 부분은 진지한 자세다. 마술은 화려해보이지만 이면에 숨겨진 고통이 더 많다. 무대 뒤에서 엄청난 연습을 해야 한다. ‘공부하기 싫으니 마술 해보겠다’ 식의 어중간한 생각으로는 낙오되기 마련이다.”
- 각오하고 와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어느 분야든 가볍게 보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성격이 다를 수는 있어도 음악이든 운동이든 마술이든 공부의 일종이다. 그 분야를 존중하는 자세로 임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내가 가르치는 마술 전공 학생 30여명에게 ‘너희 중 한 명이라도 마술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생존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도전해야 한다.” ◆ 나에게 전문대란…
도전을 위한 첫 걸음. 하고자 하는 것을 처음 시작한 곳이 전문대였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부모님 뜻도 꺾어보고,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것인 만큼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일단 들어오면 정신 차리고 치열하게 생활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4년제 다니는 친구들과는 다른 경로를 택한 거니까.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강의 첫 시간에 항상 그렇게 얘기한다. 2년 금방 지나간다, 빈손으로 졸업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 김봉구 기자 ] “한국 마술의 역사가 길지는 않아요. 세계마술올림픽이라고 불리는 피즘(FISM) 역사가 70년 가까이 됐는데요. 2003년 대회에 이은결 마술사가 출전했을 때 ‘어, 한국에서도 나와?’ 이런 반응이었죠. 그때 이후 한국 마술사들이 많이 출전해 상도 곧잘 받고 있어요. 6~7년 전 세계대회를 휩쓴 한국 비보이(B-boy) 열풍이 마술 쪽에서도 재연되는 분위기입니다.”
오는 6~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피즘2015 우승에 도전하는 ‘루카스’ 이기석 마술사(사진)의 설명이다. 주종목은 매니플레이션. 손기술로만 정면승부하는 인기 마술 분야라고 귀띔했다.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주목받은 이은결 마술사가 2003년 대회 매니플레이션 부문에 출전해 준우승한 적 있다. 지난 대회(2012년) 준우승을 차지한 이기석 마술사 스스로에겐 세계 정상을 향한 재도전 무대다.
사실 그의 마술 인생은 쉽지 않았다. 고교시절 봉사활동으로 마술을 배웠다. 마술이 좋아 어깨너머로 틈틈이 익혔다. 학교엔 마술동아리가 없어 직접 만들기도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쪽을 전공하면서도 취미로 마술을 계속하다 진로를 틀었다. 2006년 전문대(동아인재대) 마술학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술을 시작했다. 당시 전국에서 유일했던 마술학과였다.
그는 “마술이 너무 좋았다. 젊을 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인정받기 위해 미친 듯이 연습했다”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까 대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언제부터 마술에 관심을 가졌는지.
“원래 컴퓨터 쪽을 전공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했다. 대학도 처음부터 전문대 마술학과에 진학한 건 아니었다. 다른 대학에 갔다가 전향한 거다. 고교 때 봉사활동이 마술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마술을 정말 해보고 싶어서 마술학원 다닌 형을 졸라 배웠다. 마술동아리도 직접 만들고. 마술은 좋아했지만 사실 마술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 마술을 직업으로 택하는 건 쉽지 않았을 듯한데.
“고교 때까진 취미이자 놀이 수준이었다. 대학에서도 전공은 따로 있었다. 문하생 형식으로 마술을 배우긴 했지만. 그런데 배울수록 마술에 대한 관심이 자꾸 커졌다. 자연히 다른 일엔 소홀해지더라. 전공 학점도 떨어지고. 두 마리 토끼는 못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할 거면 젊을 때 내가 좋아하는 마술에 제대로 도전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 주변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나.
“어릴 때부터 컴퓨터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교육도 많이 받았다. 부모님도 밀어줬고. 그런데 마술을 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부모님도 반대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마술을 택한 건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마술을 할 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여러 마술대회에서 수상하고 실적을 내면서 이젠 부모님도 날 인정하고 응원해준다.”
- 일찍 시작한 건 아닌데, 수상 실적을 보면 많이 노력한 것 같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 어느 쪽을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 같은 경우 그만큼 마술에 미쳐서 할 수 있었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웃음) 거의 매일 밤을 샜다. 그렇게 준비해서 대회에 계속 출전해 나름의 성적을 거뒀다. 부모님을 설득하려면 내 비전을 보여줘야 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지만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나이로 25살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그때까지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자, 이렇게. 사실 벌이는 형편없었다. 25~26살 때까지 한 달에 10만~20만원대를 벌었으니. 직업으로 계속하려면 좋아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정말 잘해야 한다, 그런 결론이 나오더라.”
-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는 거구나.
“마냥 좋아만 하면 곤란하다는 거다. 진화를 해야 한다. 사실 나도 어릴 땐 ‘부모님은 나를 몰라, 고지식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이 안정적 직업을 갖길 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 현실적으로 마술사가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니 반대한 거겠지.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있으니까 대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결국 스스로 노력해 성과를 보여주고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 주로 어떤 마술을 하는지 궁금하다.
“마술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 나는 주로 손기술 위주의 매니플레이션을 한다. 인기가 많은 마술 분야다. 피즘도 올림픽처럼 주종목이 있는데 이번 대회 매니플레이션에 출전한다. 내 경우엔 밝고 화려한 것보다는 슬픈 퍼포먼스를 주로 한다. 국내에선 좀 생소하지만 유럽 등 해외에선 마술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 편이라 그런 무대가 통한다.”
- 주로 해외에서 활동한다고 들었다. 문화 차이가 큰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우선 우리는 TV가 너무 재미있다. (웃음) 외국에서도 우리 TV 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나. 유럽 쪽은 TV보다 극장에 가 공연을 보는 문화가 발달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가 몸에 배었다고 할까. 그래선지 상대적으로 한국은 좀 더 자극적인 걸 찾는 분위기 같고. 유럽에선 마술을 예술 문화로 받아들인다.”
- 특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해외 관객 입장에선 대부분 내가 처음 접하는 한국인 마술사다. 젓가락질을 신기하게 보더라. 어릴 때부터 손기술을 연습해 한국인들이 마술을 잘하겠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피즘이 70년 정도 된 오래된 대회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으로 따지면 본선 진출도 못해본 셈이었다. 그런데 한국 출신 마술사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순식간에 성적을 냈다. 마술 선진국들이 많이 놀라고 있다. 몇 년 전 비보이들이 세계대회를 휩쓸었던 그때 분위기와 비슷하다.”
- 스스로 생각하는 마술은 어떤 것인가. 마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마술은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장르다. 그런데 사람이란 이렇다 혹은 저렇다, 단순하게 정의내리기 어렵다. 사람을 대하고 사람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것. 그렇게 보면 마술의 가장 큰 매력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때그때 다르고, 소통의 한 부분으로 마술이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마술을 공부하고 있다. 마술은 내 열정이 멈추지 않게 하는 장르다.”
- 전문대 진학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마술을 배우고 싶었던 게 가장 컸다. 당시 전국에 유일한 학과였으니 당연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세상은 모범생보다는 ‘모험생’이 각광받는 시대 아닌가. 거기에 걸맞는 게 전문대 같다. 목표가 뚜렷하고 시간도 짧으니까. 4년제는 모험을 하기엔 좀 길지 않나. 남자는 군대까지 6년여를 보내야 하는데 분명한 목표나 생각 없이 다니는 건 의미 없다고 느꼈다.”
- 전문대 진학을 권하는 이유는.
“확실한 건 그때 전문대란 이유로 안 갔다면 지금 불행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대부분 학생들이 자신을 잘 모르고 점수에 맞춰 진학한다. 대학이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목표의식을 갖고 다니려면 전문대가 좋지 않을까. 스스로 만족했고 주위에도 전문대 진학을 적극 권한다.” - 마술학과에선 어떤 걸 배웠는지.
“내가 다녔을 땐 초창기라 전공 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술 전공자 자체가 드물었던 때라 서로 소통하면서 배우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은 이론과 실기 양쪽 모두 인프라가 많이 보완됐다. 마술이 뜨니 멋모르고 도전하는 때도 지나가 어느정도 정착 단계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2012년부터 겸임교수로 강의하면서 후배들에게 무대 파트를 가르치고 있다.
후배 양성과 학문적 체계화가 개인적 목표다. 마술 DVD를 낸 적 있고 지금은 책도 쓰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마술을 많이 배워왔다. 앞으로는 다른 나라가 한국에서 배워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후배들, 제자들이 마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이 됐으면 한다.”
- 마술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마술은 결국 실력이다. 비유하면 김연아가 실력 때문에 인정받는 거지, 고려대 출신이라서 인정받는 건 아니지 않나. 진짜 신경 쓸 부분은 진지한 자세다. 마술은 화려해보이지만 이면에 숨겨진 고통이 더 많다. 무대 뒤에서 엄청난 연습을 해야 한다. ‘공부하기 싫으니 마술 해보겠다’ 식의 어중간한 생각으로는 낙오되기 마련이다.”
- 각오하고 와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어느 분야든 가볍게 보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성격이 다를 수는 있어도 음악이든 운동이든 마술이든 공부의 일종이다. 그 분야를 존중하는 자세로 임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내가 가르치는 마술 전공 학생 30여명에게 ‘너희 중 한 명이라도 마술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생존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도전해야 한다.” ◆ 나에게 전문대란…
도전을 위한 첫 걸음. 하고자 하는 것을 처음 시작한 곳이 전문대였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부모님 뜻도 꺾어보고,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것인 만큼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일단 들어오면 정신 차리고 치열하게 생활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4년제 다니는 친구들과는 다른 경로를 택한 거니까.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강의 첫 시간에 항상 그렇게 얘기한다. 2년 금방 지나간다, 빈손으로 졸업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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