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에 쉼표 더하면 희망·잉태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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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인문화 대가 김호석 씨
고려대박물관에서 개인전
고려대박물관에서 개인전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할아버지에게서 다섯 살 무렵 서예와 사군자를 배웠다. 젊은 시절부터 묵향의 세계에 빠져 수묵 인물화에 매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비롯해 성철·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단종, 정약용, 김구, 안창호, 신채호, 한용운의 영정을 그려 주목받았다. 1999년에는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가로 평가받아 국립현대미술관 최연소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수묵의 붓질로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모색하는 중견 화가 김호석 씨(58)다.
김씨가 세월호 참사와 군대 내 폭행으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다음달 16일까지 서울 안암동 고려대박물관에서 펼치는 개인전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나 윤 일병 사건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그리지는 않고 물고기, 나비, 군화 등 다양한 소재를 특유의 세밀화 기법으로 그린 근작 100점을 걸었다. 전시회 제목은 ‘틈,’이다. ‘틈’을 바라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붓질로 형상화한다는 의미에서 ‘틈’에 쉼표를 더했다. 한 박자 쉬고 틈을 바라보면 그곳에 새로운 것들이 자라나 채워질 거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그림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김씨는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수많은 ‘틈’이 있다는 걸 느꼈다”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틈’은 절망과 갈등이 아니라 희망과 잉태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는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상대방에게 제압당하고, 너무 틈이 없으면 서로 꽉 막히지 않느냐”고 했다. 김씨가 미학적으로 ‘틈’에 접근한 까닭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팽목항을 네 번 다녀온 그는 물고기를 비롯해 호랑나비, 닭이 품고 있는 여러 병아리, 시든 배추, 먹이를 찾는 쥐 등 유가족의 심정을 전하는 모든 것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려냈다. ‘틈’에 대한 생각을 형상화하기 위해 상징, 비유, 은유적 묘사 기법도 활용했다. 마치 암호처럼 화면 위에 올려진 소소한 사물들은 그렇게 그림이 됐다.
여백이 압도적인 텅 빈 화면에는 삶과 죽음이 만나는 ‘틈’을 상징하는 메타포만이 가득하다. 문인화적 격조도 잃지 않았다. 서정적 감수성은 오히려 깊어졌다. 김씨는 “사회적 울분을 거친 감정적 붓질로 풀어내지는 않았다”며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작업에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02)3290-15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김씨가 세월호 참사와 군대 내 폭행으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다음달 16일까지 서울 안암동 고려대박물관에서 펼치는 개인전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나 윤 일병 사건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그리지는 않고 물고기, 나비, 군화 등 다양한 소재를 특유의 세밀화 기법으로 그린 근작 100점을 걸었다. 전시회 제목은 ‘틈,’이다. ‘틈’을 바라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붓질로 형상화한다는 의미에서 ‘틈’에 쉼표를 더했다. 한 박자 쉬고 틈을 바라보면 그곳에 새로운 것들이 자라나 채워질 거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그림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김씨는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수많은 ‘틈’이 있다는 걸 느꼈다”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틈’은 절망과 갈등이 아니라 희망과 잉태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는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상대방에게 제압당하고, 너무 틈이 없으면 서로 꽉 막히지 않느냐”고 했다. 김씨가 미학적으로 ‘틈’에 접근한 까닭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팽목항을 네 번 다녀온 그는 물고기를 비롯해 호랑나비, 닭이 품고 있는 여러 병아리, 시든 배추, 먹이를 찾는 쥐 등 유가족의 심정을 전하는 모든 것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려냈다. ‘틈’에 대한 생각을 형상화하기 위해 상징, 비유, 은유적 묘사 기법도 활용했다. 마치 암호처럼 화면 위에 올려진 소소한 사물들은 그렇게 그림이 됐다.
여백이 압도적인 텅 빈 화면에는 삶과 죽음이 만나는 ‘틈’을 상징하는 메타포만이 가득하다. 문인화적 격조도 잃지 않았다. 서정적 감수성은 오히려 깊어졌다. 김씨는 “사회적 울분을 거친 감정적 붓질로 풀어내지는 않았다”며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작업에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02)3290-15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