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체에 대규모 손실을 안긴 주범은 해양플랜트사업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는데, 이 가운데 1조5000억원 이상이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손실의 절반 이상이 해양플랜트 때문이며 해양플랜트사업 손실 규모는 조(兆) 단위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조선 3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해양플랜트사업에 뛰어든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계, 해양플랜트의 '덫'…설계능력 없이 덜컥 수주, '빅3' 모두 조단위 손실
○핵심 기술 없이 뛰어들어

해양플랜트사업에 대한 평가가 ‘미래 먹거리’에서 ‘부실위험사업’으로 바뀐 것은 조선 3사가 기본설계와 핵심 기자재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기본설계를 테크닙과 같은 유럽의 전문 엔지니어링업체에, 드릴 등 핵심 기자재는 해외 전문 해양설비업체인 NOV와 MH워스 등에 맡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조선사들은 턴키(설계·시공 일괄계약) 방식으로 해양플랜트사업을 수주했다.

기본설계와 핵심 기자재 제작을 다른 회사에 맡기다 보니 이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기본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조선사가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건조하다가 뒤늦게 재설계를 요구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전체 공정이 지연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조선사에 넘어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기본설계와 핵심 기자재 생산을 담당하는 회사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 회사가 계약상 우위를 점하고 있어 책임을 묻기 힘들다”며 “반면 최종 인도일이 늦어지면 조선사는 그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고, 다음 공사에 차질이 생기는 이중고를 겪는다”고 말했다.

경험 부족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반 선박은 세부 사양은 다를지라도 표준 선형이 있는데, 해양플랜트는 발주처마다 요구 사양이 제각각이고 설치할 바다 환경도 다 다르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상선은 계약할 시점에 비용과 수익을 99% 이상 예상할 수 있는데, 해양플랜트는 그렇지 않다”며 “100원 이익이 날 것으로 생각한 사업에서 500원 손실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향후 사업 고민하는 ‘빅3’

앞으로 해양플랜트사업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지는 ‘빅3’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과제다. 지난해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해양플랜트 발주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올 하반기 이후에는 발주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공식적으로 해양플랜트 비중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당분간 수익성이 보장된 상선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수익성을 보고 수주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두 건의 대형 해양플랜트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대규모 손실을 일종의 수업료로 생각할 수도 있다”며 “작업 난도가 높은 만큼 국내 빅3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고, 이런 측면에서 여전히 미래 먹거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