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우리의 생활 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국내차와 수입차 간의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한경닷컴은 다양한 자동차 산업의 이야기(카톡)를 까놓고 얘기할 수 있는(까톡)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정훈의 카톡까톡] 자동차도 라이벌 필요한 이유
"(쉐보레) 임팔라에 자극 받은 현대차가 그랜저 후속은 더 잘 만들지 않을까요."

최근 만난 업계 종사자의 말이다. 3주간 사전계약 3000대를 성사시킨 임팔라 출시 효과가 내년에 새로 나올 6세대 그랜저의 상품성 보강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임팔라는 그랜저와 동급인 준대형 세단인데 기본 제공하는 안전 사양은 그랜저를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판단한다. 에어백 개수는 10개로 9개인 그랜저를 앞선다. 그랜저가 선택품목(옵션)으로 제외한 차선이탈경보장치, 후측방경보장치 등 첨단 주행안전장치는 별도 옵션이 아닌 기본 탑재했다. 현대차는 이로 인해 다음 세대 그랜저에선 에어백 수를 더 늘릴지 고민하게 되고, 첨단 신기술도 기본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된다.

[김정훈의 카톡까톡] 자동차도 라이벌 필요한 이유
경쟁 구도는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자다. 두 회사는 경쟁사의 업그레이드 제품을 보면서 또 다른 신제품 개발 속도를 올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서구 팝음악 시장에선 라이벌 가수들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도록 영감을 주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1965년 영국의 비틀스가 인도 음악을 도입한 '러버 소울(Rubber Soul)'을 발표하자 미국의 비치보이스는 큰 충격을 받고 이듬해 걸작 앨범 '펫 사운드(Pet Sounds)'를 탄생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자동차 업계도 예외일 순 없다. 자동차 제조사에게 경쟁 업체의 신모델은 자극제다. 비교 대상인 경쟁 차종을 분석하면서 상품성을 보강하는 계기를 찾는 것이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수입차를 샅샅이 뜯어보고 제품을 분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산 중형 세단인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차 K5는 라이벌이 필요한 좋은 사례다. 두 차종은 현대차그룹의 형제지간이지만 한편으론 내수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이다. 최근 기아차가 신형 K5 판매를 시작하자 현대차 마케팅팀이 쏘나타 판매 간섭에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출시된 쌍용차 티볼리의 인기는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먼저 시장에 나와 소비자들에 자극을 준 르노삼성 QM3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반기 현대차가 야심차게 준비 중인 신형 에쿠스는 고급 대형세단 판매 1위인 벤츠 S클래스가 견제 기능을 하고 있다. 가격, 성능, 기능 등 모든 면에서 벤츠가 불편한 자극제인 셈이다.

만일 자동차 업계 라이벌이 없다면 어떨까. 제조사들은 소비자들의 요구나 지적에 한 걸음 더디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불합리한 가격 인상에 대한 감시 기능도 사라질 수 있다. 어느 분야든 라이벌이 없다면 발전도 없다.

김정훈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