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독창성·시대성·자기탐구…모더니즘 이해하는 키워드
《모더니즘》이란 제목만 봐서는 딱딱하고 난해한 예술·사상서 같다. ‘모더니즘’이란 개념 자체가 쉽지 않다. 문학 미술 건축 음악 연극 무용 등 거의 모든 예술 장르에서 광범위하게 언급돼 친숙하기는 한데 막상 누군가 ‘모더니즘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감해질 법하다. 관심을 갖고 파고들어도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우리말인 ‘근대주의’나 ‘현대주의’로 옮기면 더 막연해진다. 800쪽이 넘는 분량도 선뜻 책을 들기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첫인상만큼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저명한 문화사학자인 피터 게이는 역사학자 관점으로 모더니즘의 탄생과 발전, 쇠퇴를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시기적으로는 플로베르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가 나온 1840년대부터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등장한 1960년대까지다.

저자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보통 내놓는 ‘주제 개념에 대한 포괄적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포르노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는 포르노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유명한 판결을 인용하며 “모더니즘은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예를 들기가 훨씬 쉽다”는 말로 시작한다. “뛰어난 모더니즘 작품도 어느 장르에 속하든, 얼마나 유명하든, 정확히 (보면 안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포르노처럼 모더니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판별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회화와 조각, 소설과 시, 음악과 무용, 건축과 디자인, 연극과 영화를 아우르는 너무도 광대하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어서 도무지 공통의 기원이나 일관성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에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모더니즘 작가들에게서 추출해낸 공통점 두 가지를 잣대로 삼아 세심히 살펴보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지배적인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독창성과 주관성, 시대성으로 연결되는 철저한 자기 탐구다. 저자는 이 공통점을 기준 삼아 다양한 영역의 수많은 작품을 불러내고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된 사회적 상황과 시대적 맥락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이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문화예술에 관심이 높은 대학생들에게 모더니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통찰을 줄 만한 책이다.

옮기는 과정의 실수로 보이지만 책에 사실과 다른 오류도 더러 있다. 입센의 ‘유령’이 런던에서 초연된 건 ‘1981년’이 아니라 ‘1891년’이다. 뒤표지에 발레공연 기획·제작자 댜길레프를 ‘천재 안무가’라고 소개한 것도 잘못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