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삼성전자·현대차 필요

<대담 최인한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겸 한경닷컴 뉴스국장>

[ 김봉구 기자 ] 송희영 건국대 총장(사진)을 만난 지난 2일은 2012년 9월 취임한 그가 막 임기 4년차의 첫발을 뗀 시점이었다. 송 총장은 선도학과인 ‘프라이드 리딩그룹’을 선정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남은 임기 1년 동안에도 강점 분야 성장을 통한 견인 효과를 기본 방침으로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글로벌 대표주자가 될 대학의 삼성전자·현대자동차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 학교 차원에선 바이오·생명과학을 비롯한 리딩그룹 6개 분야를 대표주자로 꼽았다.

- 학교가 빠르게 발전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학교가 어디에 있느냐도 대학 발전의 중요한 요소인데요. 10여년 전부터는 건국대가 지역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강남과 가장 가까운 종합대가 됐어요. 학교 앞도 서울 3대 상권으로 떠올랐죠. 무엇보다 캠퍼스 자체가 참 좋아요. 66만㎡(20만평) 평평한 부지에 6만㎡(1만8000평) 크기의 호수를 갖고 있는 이런 캠퍼스는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 학생들이 다니기 좋은 환경이더군요.

“우리 학생들이 어느 조직에 가도 잘 적응한다는 평을 받습니다. 졸업생 취업유지율이 85% 가까이 되거든요. 건국대 출신은 믿음이 간다는 겁니다. 캠퍼스가 주는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교시가 ‘성(誠)·신(信)·의(義)’이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이 우리 대학의 자랑거리입니다.”

- 대학 발전전략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가 무역은 세계 7대 대국이고 1인당 국민소득도 실질적으로 3만달러 수준이에요. 대부분 지표에서 세계 200여개국 중 10위 안에 들어가죠. 굉장한 겁니다. 그런데 그만한 수준의 한국 대학은 있느냐? 없단 말이죠. 경제규모에 걸맞은 세계적 일류대학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원인을 깊이 연구해 해결책을 내놓고, 정부도 관심을 갖고 지원할 필요가 있어요.”

-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해왔습니까. 공업화 정책, 그중에서도 대외 수출 위주, 이렇게 방향을 설정했죠. 자본이 부족하니 여러 군데 분산시키면 동력이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견인해나가는 ‘리딩그룹’을 만든 겁니다. 이걸 해낸 건 국민의 저력이지만,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달성 수단을 만들어 힘을 합치도록 하는 건 지도자의 리더십이에요.

그렇게 해서 지금 세계에서 경쟁하는 한국 산업의 대표주자 삼성전자·현대차가 나온 겁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세계 일류대학을 못 따라가는 원인은 다른 것도 있지만 돈 문제가 제일 큽니다. 분필과 칠판만 갖추고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어요. 각종 시설이 필요합니다. 또 노벨상급 훌륭한 교수들도 글로벌 시대에 보수를 많이 주면 오거든요. 결국 재원 부족이 대학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죠.”

- 모든 대학들이 고민하는 부분이죠.

“대학을 기업에 비유하기엔 조심스럽지만 ‘대학의 삼성전자·현대차’가 나와야 해요. 그렇게 되려면 먼저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 역시 대학을 획일적으로 만들어선 안 돼요. 한국 대학의 글로벌 대표주자를 내야죠. 스탠퍼드대 보세요. 졸업생들이 창업한 회사의 매출 실적이 영국의 국민총생산(GNP)을 능가한다고 하잖아요.

물론 한정된 자원으로 전부를 세계 일류로 만들 수는 없어요. 서울대가 모든 분야 대표주자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한 분야에 집중하면 가능해요. 예컨대 건국대는 바이오·보건, 한양대는 공학, 이런 식으로 각 분야 대표주자가 되는 거죠. 불균형 투자, 불균형 성장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그게 차별화 아닙니까.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 건국대는 어떻습니까. 수의학·축산학 같은 분야가 간판인데요.

“대학 내에서도 마찬가지죠. 건국대에 학과가 73개 있었어요. 올 초 학과단위 조정을 통해 63개로 줄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전부를 똑같이 지원해 끌고 가긴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총장이 된 뒤 ‘프라이드 리딩그룹’ 6개 분야를 만들었죠. 수의학, 생명특성화대학 특성화학부 같은 분야가 모두 포함됐습니다.

(건국대의 바이오 분야 강세는 동문들 면면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코스닥 시가총액 1·2위를 다투는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을 비롯해 천종윤 씨젠 대표, 김광호 보령제약 대표 등 동문인 최고경영자 50여명이 바이오·제약 업계에 포진했다. 에이즈 백신 연구로 노벨상 후보에 오른 강칠용 웨스턴온타리오대 교수, 국내 첫 인간배아줄기세포를 개발한 정형민 전 차바이오텍 대표, 국내 최초로 복제돼지 생산에 성공한 김진회 교수도 모두 건국대 출신이다.)

세부적으로 물리학에서도 양자 및 소자, 줄기세포 연구 같은 분야가 특화돼 있어요. 정원을 줄이는 교육부 방침을 따르지 않고서도 대학특성화사업(CK II사업)을 따낸 대학이 딱 3곳 있는데 건국대 생명특성화대학이 그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특성화가 잘돼 있는 거죠. 사회과학 계통에선 남들이 아무도 하지 않던 1984년에 부동산학과를 만들었어요. 부동산학이 돈만 좇는 학문이 아닙니다. 미국 유명대학들에도 부동산학과가 개설돼 있어요. 115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7600㎡(2300평) 크기 부동산학관을 지었습니다. 한 전공이 단독 건물을 갖고 있는 건 국내에 건국대 부동산학과밖에 없을 겁니다. 국내가 아니라 세계에서 경쟁하란 의미를 담았죠.”

- 가능성 있는 분야에 재원을 몰아주는 거군요.

“최근 수년간 대학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돼 있는 상태입니다. 기부도 호응이 크지 않고요. 대학으로선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 기업들의 대학 기부가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면서요.

“세법 개정 영향이 커요. 모 회장이 재단을 만들어 기부한 게 ‘재산 자가증식’ 아니냐, 막자 해서 법이 바뀌었죠. 2년 전만 해도 1000만원 기부하면 500만원 이상 돌려받았는데 지금은 환급 금액이 150만원 정도로 떨어졌어요. 일본의 경우 800만원 이상 돌려받는다고 합니다.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전체를 죽인 셈이에요. 부정을 저질러도 된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소소한 문제점을 막으려고 더 많은 사회적 코스트(비용)를 들이는 건 문제라는 얘기죠.”

- 국가고시에서도 상위권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각종 국가고시 합격자 배출에서 톱10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어요. 지난해 사법시험, 행정·기술고시 모두 전국 8위에 올랐습니다. 사실 우리 대학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국가고시 6~7위권을 꾸준히 유지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인회계사(CPA), 보험계리사 등 국가자격증 대비를 다양화하고 있죠.”

- 요즘 사시 존치 논란이 뜨거운데, 어떻게 봅니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갖고 있는 건국대 입장에서만 본다면 사시 존치에 반대해야죠. (웃음) 기왕에 도입한 제도인 만큼 안정성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요. 그런데 사회적 여론은 다른 듯합니다. ‘사다리’를 없애서야 되겠느냐는 거죠. 로스쿨은 ‘돈스쿨’이다, 이런 비판도 있고요.

아쉬운 점이 있어요. 로스쿨을 도입할 때 미국식 제도가 국내에 맞을지 확실히 검토했어야 했습니다. 예컨대 다양한 변호사의 필요성이 있다면 사시 체제 내에서 한시적으로 해당 분야에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든지, 사법연수원 기간을 2년에서 더 늘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완할 수 있는 문제였거든요. 이번에 사시 존치로 결정되면 로스쿨은 50%는 의미를 상실하는 겁니다.”

- 내년이 개교 70주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설립 단계부터 훌륭한 분이 맡아줬어요. 상허 유석창 선생은 근대사학 100년사에 ‘13인의 스승’으로 뽑힌 분입니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의 ‘한국 농업의 별’ 13인에도 선정됐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지만 의사보다 교육자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저서에 ‘죽을 때 논두렁을 베고 죽겠다’는 말이 나와요. 새마을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분이죠. 돌아가셨을 때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질 만큼 존경받는 분이었습니다.

상허 선생이 해방 직후 정치적 혼돈의 시기에 ‘정신이 바른 사람이 정치가가 되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해서 정치대학으로 시작했어요. 이후 종합대로 승격하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축산대를 만들었고 농림대·지역사회개발초급대를 잇달아 설치했죠. 농업이 산업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때였어요. ‘농촌 부흥 없이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만든 겁니다. 시대 상황에 맞게 의미가 있었던 거죠. 두뇌 회전이 빠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이미 1년 전부터 70주년 행사 준비팀을 가동하고 있어요. 내년에 맞춰 국제학술심포지엄 2~3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건국대와 교류협약을 맺은 해외 450~460개 대학에서 석학들을 초청할 생각이에요. 학교에 기부한 동문들을 위한 음악회도 준비 중입니다. 무엇보다 학교 역사를 집대성한 70년사가 완간됩니다. 70주년 기념 엠블럼도 만들고 있고요.”

- 학생들에게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은 뭔가요.

“과거 1970~1980년대엔 대학생들이 민주화 시위로 한 세월 보냈죠. 공부도 그렇지만 젊은이들이 운동도 게을리 했거든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른 겁니다. 저는 10~20대에 해야 할 게 체력 단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체력이 약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학생 때 공부보다 오히려 체력 단련, 운동이 더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대운동장의 낡은 콘크리트 스탠드를 철거하고 체육광장을 새로 짓고 있습니다. 접근성을 좋게 만들어 운동장을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대학은 젊은이를 받아들이는 곳 아닙니까? 외국 유명대학들 가보면 체육시설 잘 갖춰놓고 24시간 개방해요. 사실 총장이 되기 전부터 생각했던 겁니다. 운동하고 공부하는 대학생, 이게 기본이에요. 교수도 총장도 마찬가지죠. 몸이 아픈데 연구는 어떻게 하고 대학 운영은 어떻게 합니까. (웃음)”

- 잘 생각한 것 같습니다.

“네, 콘크리트로 둘러쳐져 있던 짜투리땅이 살아나는 효과까지 있어요. 자그마치 3만3000㎡(1만평) 정도 됩니다. 건국대는 재단의 자산가치(수익용 기본재산 보유액)도 높아요. 사립대 중 1위입니다. 법인 수익사업이 잘되면 대학에 100% 전출하는 구조니까 기대치도 큽니다.”

- 일본에서 유학하고 무역을 전공했죠.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걱정이에요. 한일관계는 개선돼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한국이 한 두 단계 더 높이 질적 도약을 하려면 일본에서 기술이나 제도를 더 가져와야 해요. 세부적인 기술은 아직 우리가 못 따라갑니다. 핵심 부품기술은 일본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선결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일단 양국 정상이 만나서 얘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풀어나가야죠.

물론 일본의 행태가 나빠요. 하지만 일본 내 소수 극우파 목소리를 일본 전체 국민의 입장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일본 국민 대다수는 독도가 자기 땅 아니란 걸 알아요.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게 전부는 아니란 거죠. 중국과 가까워지는 건 좋지만 일본과 너무 멀어져서도 안 돼요. 아직 한일관계가 경색 국면인데 민간 차원 교류부터 활발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 학교 차원에서 청년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을 실리콘밸리에 직접 보내야 해요. 창업하라고만 하면 누가 합니까. 도전정신, 기업가정신이 있어야 하죠. 실리콘밸리에서 무슨 교육을 받고 거기에 취업하라는 게 아니에요. 직접 가서 보고 겪으면 느끼는 게 있습니다. 사실 학교 차원에서 추진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개별 대학이 하기엔 법적·제도적 장벽(허들)이 높습니다. 정부가 맡아서 해봤으면 좋겠어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돈 내버린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로스(손실)가 아니라 코스트로 계산해야 해요. 1000명 보내서 제대로 된 창업가 한 명만 나와도 됩니다. 빌 게이츠나 손정의 같은 사람 한 명 나오면 수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요. 꼭 실리콘밸리가 아니더라도 독일이나 북유럽 강소국가들에 젊은이들 보내서 영감을 얻게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알맹이인 도전정신을 채워야 한다는 거군요.

“도전정신이 약한 거예요. 다들 대기업 입사만 원합니다. 우선은 그게 좋으니까요. 개인적 행복추구권에 입각해 보면 선생으로서 제자들을 탓할 순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입사해 대기업 부품처럼 돼버려서 정년도 못 채우고 은퇴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어렵더라도 젊을 때 창업에 도전하는 게 맞을까요.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이 우리 대학 동문이에요. 예전에 학습지 사업 인정해줬나요? 그 어려움을 뚫고 지금은 굴지의 재벌이 됐단 말이죠.

우리 젊은이들이 뛰어난 DNA를 갖고 있어요.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주면 분명히 엄청난 창업가가 나올 겁니다. 대학은 기업가정신을 열심히 교육하고 정부는 제대로 지원해야죠. 여기에 금융기관은 예컨대 30년 분할상환에 저리로 창업자금을 대주는 식으로 3박자가 어우러지면 불가능한 게 아니에요. 내일(3일) 건국대 학생들이 직접 창업한 ‘캠퍼스 푸드트럭’ 영업이 시작됩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도전하는 거죠. 저도 푸드트럭에 사먹으러 갈 겁니다. (웃음)”

◆ 송희영 총장은…

경남 합천 출생. 진주고와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中央)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기획조정처장 3차례를 비롯해 부총장까지 지낸 뒤 2012년 총장에 취임했다. 한국무역학회장, 한국관세학회 이사장, 한일경상학회 부회장, KBS 객원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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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2015 대학총장 인터뷰] "대학의 삼성전자·현대차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