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한 기회나 권리를 추첨으로 무작위 배분하는 사례는 사회 곳곳에서 포착된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과 공공단체 등은 물론 최근엔 종교계까지도 ‘복불복’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 익산시의회 비례대표 경선 출마자들의 운명은 제비뽑기로 갈렸다. 시·도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를 뽑는 선거인단이 추첨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당은 후보 6명이 각각 200명씩 제출한 총 1200명의 선거인단 명부에서 경선 당일 무작위 추출로 400명을 뽑았다. 자기가 제출한 선거인단 명부에서 많은 사람이 뽑힌 후보자일수록 경선에서 유리했다. 당내에서조차 ‘정책 경쟁’이 아닌 ‘재수 경쟁’이란 비판이 나왔다.

근무 환경이 쾌적하고 공무 체험의 기회까지 얻을 수 있어 대학생 사이에서 ‘꿀알바’로 불리는 관공서 행정보조 아르바이트 자리도 운이 없으면 얻기 힘들다. 지난 6월 여름방학 기간 근무할 대학생을 모집한 충북 보은군청은 지원자가 140여명에 달하자 차상위계층·기초생활보장 수급자 30여명을 우선 선발한 뒤 나머지 20여명은 추첨으로 선발했다. 제비를 뽑는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민원이 제기돼 제비 뽑을 순번을 제비뽑기로 정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추첨으로 아르바이트생을 선발한 청주시는 공개추첨 행사에 경찰관까지 입회시켰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이달 초 주말 휴양림 이용 예약 방식을 컴퓨터 무작위 추첨제로 바꿨다. 기존엔 인터넷 선착순 신청 방식이었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할 수 있었던 예약이 운에 의해 결정되는 데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이 높다.

추첨제는 종교계에도 스며들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목사 부총회장 선거 때 후보자가 세 명 이상이면 제비뽑기로 두 명을 선출한다. 두 명을 놓고 대의원 1500명이 직접선거로 당선자를 가린다. 2001년부터 10년간은 완전 제비뽑기로만 선출하다가 후보자 검증 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010년 이같이 개정했다. 하지만 교계 일각에서는 현행 방식도 제비뽑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마지혜/박상용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