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추선 인도 열흘 남기고 계약 취소…현대삼호중공업, 6700억 날릴 위기
현대삼호중공업이 해저유전 시추선의 납기 기일을 맞추지 못해 선주사로부터 계약을 취소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6700억원 규모의 수주가 무산된 것은 물론 1700여억원에 달하는 선수금과 이자를 물어줘야 할 상황에 처했다. 최근 유가하락 등으로 발주사가 의도적으로 선박 인도시기를 늦추려는 경우도 적지 않아 조선사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선박 인도 지연을 이유로 계약 취소

노르웨이 유전개발업체인 시드릴은 현대삼호중공업이 선박 인도기일을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잠수식 시추선 한 척의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15일(현지시간) 밝혔다. 시드릴은 2012년 현대삼호중공업에 제6세대 울트라 심해 반잠수식 시추선을 2014년 말까지 제작해달라고 주문했다. 계약금액은 5억7000만달러(약 6700억원)였다.

하지만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해 말까지 건조를 완료하지 못했고, 시드릴은 이를 문제삼아 계약 취소권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했다. 시드릴은 현대삼호중공업에 파견한 감독 담당자도 모두 철수시켰다.

시드릴은 계약조건에 따라 1억6800만달러(약 1760억원)에 달하는 선수금과 이자를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시추선을 시운전하다가 200억원대의 시추봉을 바다에 빠뜨리는 등 공정상 문제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삼호중공업은 그러나 시드릴이 최근까지 인도 취소의 뜻을 밝히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계약을 취소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오는 25일 인도를 목표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고, 시드릴과 다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부적으로는 시추선 제작이 지연된 게 시드릴의 설계 변경 요구 때문인데, 건조가 늦어졌다고 인도를 거부하겠다고 결정한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기본설계가 잘못돼 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수정 작업이 예상보다 오래 진행됐다”며 “시드릴이 이후에도 요구사항을 계속 추가해 이를 반영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발주사, 저유가로 넘겨받기 꺼려

최근 유가하락으로 인해 선주사가 원유 시추장비 인도를 취소하거나 미루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1일 드릴십(이동식 시추선) 한 척의 인도시기를 올해 12월에서 2017년 6월로 연기했다고 발표했다. 선주사가 연기를 요청했고, 삼성중공업이 이를 수용한 결과다. 선주사는 인도를 늦추는 대신 선가를 약 1000억원 올려주기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같은 방식으로 올 들어 시추장비 6척의 인도 시점을 미뤘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19일 7000억원 규모의 드릴십 계약을 해지했다.

선박 인수대금을 마련하지 못한 선주사가 2차 대금을 인도할 때 납부하겠다고 했고, 대우조선은 이를 거부했다. 대우조선은 드릴십을 인수할 다른 회사를 찾고 있는 중이다.

조선업계에서는 시추장비를 발주한 에너지업체들이 유가가 계속 떨어지자 주문한 시추장비의 인수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지만, 현재 40달러대로 떨어졌다. 15일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배럴당 43.87달러를 기록했다.

업계는 해저유전 시추사업이 이익을 내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이상이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양시추 붐이 일었던 2012~2013년 일부 선주사들이 시추 장비의 사용처를 확보하지 않고 발주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국제유가가 떨어져 시추장비 수요가 줄자 이를 인도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선주사는 인도 시점을 늦추기 위해 다양한 이유를 들어 추가 작업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시추장비의 색깔이 주문한 것과 미세하게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재작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선주들이 지금은 시추장비 인도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