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백신 강자가 미래 잡는다"…제약사들 '총성없는 전쟁'
백신이 국내 제약사들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화학의약품 시장이 포화상태인 가운데 백신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제약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녹십자 SK케미칼 LG생명과학 보령제약 일양약품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녹십자 SK케미칼 일양약품은 독감백신 분야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9년 국내 첫 독감백신 개발에 성공한 녹십자가 선점해온 독감백신 시장에 SK케미칼이 세포배양이라는 최첨단 방식의 제조법으로 올해부터 뛰어들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충북 음성공장에서 자체 백신을 생산하고 있는 일양약품까지 국내 독감백신 시장은 올해부터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LG생명과학과 보령제약은 독감백신 대신 특화 영역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백신을 3대 선도 사업 중 하나로 정하고 다양한 자체 백신을 내놓고 있다. 국내 최초로 B형간염백신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간염 뇌수막염 등 5세 미만 영유아에게 발생도가 가장 높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5가 백신 ‘유펜타’의 WHO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보령바이오파마는 세포배양 기술을 이용한 일본뇌염 사백신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백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백신이 미래 성장산업

백신은 화학의약품에 비해 고성장 의약품이다. 화학의약품의 평균 성장률이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의 부재로 3%대 성장에 그치고 있는 반면 백신은 국내외에서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백신 시장은 2013년 기준 247억달러 규모이며 연평균 성장률은 13~15% 수준이다.

유아용 필수접종 백신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최근에는 자궁경부암백신, 대상포진백신, 폐렴구균백신 등 성인 백신 시장이 커지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2013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백신은 화이자의 폐렴구균백신 ‘프리베나’로 연간 40억달러어치가 팔렸다. MSD의 자궁경부암백신 ‘가다실’도 18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등 성인용 프리미엄 백신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는 백신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SK케미칼이 프리미엄 백신 시장에 적극 도전하고 있다. 사노피파스퇴르와 손잡고 자체 폐렴구균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가운데 대상포진백신 개발도 막바지 단계다.

국내 백신 시장 규모는 약 7000억원 규모며 필수예방접종 백신이 약 30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2020년까지 현재 36%인 백신 자급률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잡고 있어 외국산의 국산 대체효과가 기대된다. 세계 구호용 백신 시장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머징 국가의 소득 수준 향상 및 WHO 산하 유니세프와 범미보건기구의 구호백신 시장이 크게 늘고 있어 해외 진출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녹십자 - SK케미칼 첫 격돌

본격적인 독감백신 접종 시기를 앞두고 선발주자인 녹십자와 후발주자인 SK케미칼이 맞붙었다. 백신분야 국내 1위 업체인 녹십자의 자존심과 백신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아 과감한 투자를 진행해온 SK케미칼의 공격적인 행보가 ‘창과 방패’처럼 격돌하는 모습이다. 두 회사는 독감백신 생산방식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녹십자는 전통적인 유정란 방식으로 독감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독감백신이 유정란 방식으로 생산될 정도로 안정적인 수율이 장점이다. 닭의 유정란을 활용하기 때문에 유정란을 통한 생산에 6개월가량 걸리지만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산방식이라 기간은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게 녹십자의 설명이다.

SK케미칼은 경북 안동에 4000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로 세포배양방식의 백신공장을 세웠다. 세포배양에 2~3개월밖에 걸리지 않고 조류독감 등으로 인한 유정란 확보 우려나 유정란 방식에서 사용하는 항생제 등을 쓰지 않기 때문에 보다 안전하다는 게 SK케미칼의 설명이다. 세포배양방식의 생산설비는 글로벌 제약사인 노바티스에 이어 SK케미칼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다. SK케미칼은 6개월 이상 영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접종할 수 있는 유아 및 청소년용 독감백신을 세포배양 방식으로 처음 개발했다.

올가을 ‘백신대전’은 녹십자와 SK케미칼의 전초전 성격이다. 일양약품까지 포함한 국내 백신 3사의 생산능력을 감안할 때 국내 업체들은 해외 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녹십자의 연간 생산능력은 5000만도즈(1도즈는 1회 투여량)이며 SK케미칼은 1억4000만도즈, 일양약품은 6000만도즈에 달한다. 3사의 연간 생산능력은 2억5000만도즈로 국내 독감백신 수요인 2000만도즈를 크게 웃돈다. 이에 따라 이들 3사는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큰 독감백신 시장은 WHO 산하 유니세프와 범미보건기구 등의 구호 백신 시장이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WHO의 사전적격인증(PQ)이 필요하다.

녹십자는 독감백신 분야에서 WHO의 PQ를 받았다. 덕분에 녹십자는 지난해 독감백신 수출로 400억원을 달성했다. 국내를 포함한 독감백신 매출이 처음 1000억원을 돌파한 것도 PQ에 따른 수출 효과 때문이다. SK케미칼과 일양약품은 연내 PQ를 확보해 내년부터 글로벌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