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항공사 '구원투수'로 투입…경영혁신·인재경영 '양날개'로 델타의 '고공비행' 이끌다
미국 델타항공은 전 세계 64개국에서 800대의 항공기를 운항하는 거대 항공사다. 올해 2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동기 대비 22% 증가했을 정도로 내실도 탄탄하다. 경쟁사인 아메리칸항공(AA)과 더불어 글로벌 항공업계 1, 2위를 다툰다. 하지만 8년 전만 해도 델타항공은 파산 직전에 몰렸을 정도로 부실한 회사였다. 델타항공의 화려한 부활은 구원투수로 나선 리처드 앤더슨 최고경영자(CEO)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글로벌 항공업계 최고의 리더로 인정받는 그는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를 던지며 델타항공의 궤도를 고도(高度)로 올려놓았다.

법조계에서 항공업계로

리처드 앤더슨은 미국 텍사스주의 갤버스턴에서 자랐다. 10대 시절 그의 부모가 사망하면서 힘겨운 성장기를 겪어야 했다. 앤더슨은 휴스턴대에 진학한 뒤 막노동자로 일하면서 로스쿨에 도전했다. 이곳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그는 남텍사스대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땄다. 이후 앤더슨은 10년간 텍사스 해리스 카운티의 형사법원에서 법무관으로 일하다가 검사로 활동했다.

항공업계에 뛰어든 것은 1987년이다. 컨티넨털항공(2010년 유나이티드항공과 합병)의 법무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다. 항공산업에 눈을 뜨기 시작한 앤더슨은 1990년 노스웨스트항공의 법무자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7년 후엔 기술운영과 운항, 공항 업무 등을 책임지는 부사장에 오른다. 그의 장기는 항공기 유지관리 부문이었다. 효율적인 관리로 항공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기체 결함 등에 의한 비행 취소 건수가 크게 줄었다. 앤더슨은 2001년 2월 노스웨스트의 CEO로 발탁됐다.

과감한 승부수로 위기 돌파

앤더슨이 항공업계 CEO다운 수완을 발휘한 것은 2007년 4월 델타항공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다. 당시 델타항공은 만신창이 신세였다. 국제유가 급등과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2004년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간 뒤, 구조조정을 약속하고 간신히 파산을 면한 상태였다. 델타항공의 요청으로 일단 이사회에 들어간 앤더슨은 2007년 9월 CEO 직을 수락하면서 본격적으로 델타를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항공산업은 정말 흥미 있는 비즈니스다. 복잡한 문제를 푸는 재미가 있다”는 말로 혁신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첫 해법은 합병이었다. 델타 CEO를 맡은 지 7개월 만인 2008년 10월 그가 전에 몸담았던 노스웨스트항공과의 합병을 발표했다. 노스웨스트 역시 경영난으로 고전 중일 때였다.

앤더슨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델타항공을 보완해줄 네트워크와 자산을 가진 항공사가 필요했다”며 “태평양과 미국 중서부 지역을 운항하는 노스웨스트항공은 조건에 부합하는 유일한 항공사였다”고 밝혔다. 미국 동부연안과 대서양 횡단, 남미 노선 등에 강점을 가진 델타와의 시너지 효과를 겨냥한 결정이었다. 앤더슨은 더불어 효율화와 간소화를 통해 10억달러의 비용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허를 찌르는 역발상 경영

노스웨스트와의 합병에 이어 다른 글로벌 항공사들과는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구축했다. 다양한 국제노선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브라질 1위 항공사인 골(GOL), 멕시코 아에로멕시코(AeroMexico) 등의 지분을 인수했다. 2012년 12월에는 싱가포르항공이 보유했던 영국 버진애틀랜틱항공사의 지분 49%를 인수했다. 유럽 항공망 확충과 유럽의 허브 공항인 영국 런던 히드로공항 취항 등을 노린 다목적 포석이었다.

에어프랑스-KLM과는 지분투자 없이 대서양 횡단 노선을 공동으로 운영해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을 도입했다. 항공업계에서 처음 시도한 방식이었다. 지난 7월에는 중국 동방항공 지분 3.55%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 ‘전략 합작관계’를 체결해 중국 본토 공략에도 나섰다.

앤더슨의 가장 혁신적인 승부수로 회자되는 사례는 정유사 인수다.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었을 무렵, 아예 정유공장을 사들여 안정적으로 항공유를 공급하겠다는 역발상적인 전략을 짠 것이다. 항공사가 정유공장을 인수한다는 것은 그때까지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매물을 물색하던 그에게 마침 필라델피아에 있는 ‘트레이너(Trainer)’라는 이름의 정유공장이 매물로 나왔다. 내부 검토 끝에 인수할 경우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 그는 2012년 이 정유공장을 1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보잉 787 항공기 한 대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정유공장에서 델타는 항공유의 80%를 공급받았다. 고유가 시대가 이어지면서 항공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델타는 정유사 매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앤더슨은 2013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간 델타에 가장 큰 비용 증가를 초래한 것은 제트연료 비용”이라며 “델타의 정유공장 매입은 일종의 수직통합에 해당하는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사람 중심 경영이 재도약 동력

노사 화합을 중시하는 인재 경영도 델타의 재도약이 성공한 비결로 꼽힌다. 앤더슨은 노스웨스트항공과 합병을 단행했을 때도 감원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조종사 급여를 30% 인상하고 모든 직원에게 회사 지분의 15%를 지급하는 우리사주제도를 도입해 임직원들을 사로잡았다. 회사이익의 10~20%를 보너스 형태로 지급하는 직원이익공유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사람을 아끼는 앤더슨의 경영 마인드는 실제 성과로 입증되고 있다. 델타는 정시 출발, 비행 취소율, 수화물 분실률 등 각종 서비스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델타항공은 항공 전문지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로부터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됐다. 올해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상위 50대 기업에 2년 연속 뽑혔다. 과감한 경영 혁신과 사람을 중시하는 인재 경영은 8년간 델타항공의 기수를 잡은 리처드 앤더슨의 양날개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