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농업, 서로에게 길을 묻다

전세계적으로 농업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 정보기술(IT) 업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는 2012년 소규모 자영농에 의한 ‘농업혁명’을 역설했다. 지금도 수퍼종자 등 농업에 관심이 높다. 투자가 짐 로저스마저 “농업이 미래산업”이라고 말할 정도로 농업 열풍이다.
[이춘규의 한일 농업 포커스] <1> 한일 농업, 서로에게 길을 묻다
이춘규 남서울대 초빙교수(경제학 박사)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농업과 농업인의 처지는 상대적으로 옹색하다. 양국 농업은 공통적으로 ‘저성장 고령화’라는 사회현상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농업계와 농부들은 자유무역협정(FTA)시대 외국농산물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농산물가격 파동이 일상화되며 현상 타파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농업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 상대의 해결 방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두 나라 농업 유사점은 다양하다. 모두 산지가 70% 안팎이라 대규모 기업농이나 기계화에 불리한 지형적 조건이다. 생산원가가 높아 미국과 호주 등의 농산물과 규모의 경쟁이 어렵다.

농촌 전경도 무척 닮았다. 일본 니가타, 구마모토 지역 너른 들녘의 바둑판 같은 논들은 한국 김제 들녘과 유사하다. 야마나시, 나가노현의 중산간 지역은 충북 지역의 모습을 닮았다. 도호쿠(동북) 지역의 산간지역 산촌 농업은 우리나라 강원지역을 옮겨 놓은 것처럼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농업사적인 측면에서도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 한국은 1945년 해방된 뒤, 일본도 비슷한 시기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농지개혁을 통해 양국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대규모 지주와 소작제가 해체됐다. 자영농화, 소규모 영세농화 되어 영농 대규모화가 쉽지 않다.

급격한 이농 현상도 비슷하게 겪었다. 두 나라 다 1960년대 전후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이 도시의 값싼 노동력 제공 기지 역할을 하며 이농이 이뤄져 고령화, 일손 부족 현상을 초래했다. 기업의 농업 참여 등 농지 집적화, 효율화를 시도하지만 강한 반발에 주춤하고 있다.

한일 농업의 차이점을 비교 연구하면 양국 농업이 서로에게 길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귀농·귀촌(일본은 취농)이 고령화 해결의 대안으로 주목받지만 일본의 귀농인구는 2004년 8만1천명 정점에서 지금 4만명선, 절반으로 줄었다. 지나친 ‘귀농 낙관론’에 참고가 될 듯하다.
농산물직매장은 우리나라에서 최근 조명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농산물직매장이 발달, 무려 2만2980 개소(농림수산성 통계 인용)에 이른다. 미치노에키, 농산물직매소 등 이름으로 설치되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벤치마킹을 강화해야 한다.

식량자급 사정은 양국이 비슷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이 40%대 후반, 곡물자급률이 지난해 24% 였다. 일본은 식량자급률이 5년 연속 30%대, 곡물자급률은 20%대 중반이다. 쌀 자급률은 90% 안팎으로 양국이 비슷하다. 1인당 쌀소비량은 한국 67.2㎏, 일본 56.8㎏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책 당국 모두 식량자급률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구온난화와 기상재해 빈발에 따른 국제적인 식량 쟁탈전에 대비한 곡물의 안정적 확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정과 대처법은 상당히 다른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 국제곡물파동을 계기로 한국판 카길(세계 1위 곡물메이저)을 만들겠다며 국제곡물시장 진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마루베니,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도요타통상 등 종합상사 등이 국제곡물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마루베니는 2012년 세계적인 곡물집하유통망을 갖고 있는 미국계 곡물회사 가빌론을 인수, 연간 곡물취급량 6000만톤으로 곡물메이저 세계 3위로 우뚝섰다. 1위 카길이 연간 7500만톤, 2위 ADM(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이 연간 7000만t 규모이니 명실공히 세계최고 수준이다.

기업·정부가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 세계적 곡물 강국이 된 일본의 전략은 참조해야 할 것이다. 한국보다 빨리 고령화된 일본 농촌에서 마을별 생산자조직이 자율적, 혹은 지자체의 지원 속에 결성돼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는 것같은 고령화 극복 방안 등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 이춘규 남서울대학교 초빙교수 프로필 >>

경제학박사( 중앙대 농업 및 자원경제학)
전 서울신문 정치부 선임기자
전 서울신문 경제담당 부국장
전 서울신문 도쿄특파원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졸업

저서: 일본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강·2009)
일본을 다시 본다(밝·2005·공저)

번역서: 도전자 이나모리 가즈오(서돌·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