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 고령층이 씀씀이를 크게 줄여 내수가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대 수명은 늘었지만 노후 대비가 부족해 지갑을 열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대규모 할인행사를 열고 개별소비세를 내리는 등 소비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지만 이런 단기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식주마저 돈 안쓰는 고령층, 내수 회복 '복병'
○소득만큼 소비 안 늘어

29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이 늘어난 만큼 소비도 증가하는 일반적인 현상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0~2007년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4.5% 늘었고 같은 기간 가계 소비는 비슷한 수준인 4.6% 증가했다. 하지만 2008~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을 받았던 기간에는 실질 GNI 증가율이 3.2% 수준이었지만 가계 소비 증가율은 1.9%에 그쳤다.

2011~2014년에도 가계 소비 증가율(1.7%)은 실질 GNI 증가율(3.0%)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흥직 한은 동향분석팀 차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득과 소비의 연계성이 약화돼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증가하는 성장의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고령층 소비성향 급감이 원인

전문가들은 만 60세 이상 고령층의 급격한 소비 축소를 주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가계의 평균소비성향(가처분소득에서 소비 지출의 비중)은 지난 2분기 67.5%로 10년 전(2005년 2분기)보다 11.2% 감소했다. 반면 같은 시기 전체 평균은 6.0% 줄어드는 데 그쳤다. 고령층 소비 성향의 감소 폭이 두 배 가까이 큰 것.

이 차장은 “고령층은 의식주 등 기본적인 소비만으로 소득의 대부분을 지출하기 때문에 다른 연령층보다 소비성향이 높은데 최근 이런 경향이 옅어졌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지난 10년 동안 고령화 심화로 전체 인구가 5.1% 늘어날 때 60세 이상 인구는 55.8% 급증해 고령층의 소비 감소는 내수에 더욱 큰 타격을 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2003~2013년 전체 평균소비성향이 4.6%포인트 하락했는데 60세 이상이 기여한 비중은 전체의 26.0% 정도였다. 60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17.8%인 것을 감안하면 기여도가 컸다는 분석이다.

○불안한 노후가 발목

고령층의 소비성향 감소는 불안한 노후 탓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됐다. 모아둔 돈은 없는데 수명은 늘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계가 돈을 얼마나 아껴 쓰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흑자율(가계소득에서 지출을 하고 남은 흑자액이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고령층은 지난 2분기 32.5%로 전체 평균(28.4%)보다 높았다. 최근 10년 새 35.8%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평균의 증가 폭은 19.0%였다.

불안한 노후로 경제활동에 나서는 고령자도 늘었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용률은 31.3%로 전년보다 0.4%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5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 중 앞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이 61.0%에 달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7.0%)이 생활비 때문이라고 답했다. 권규호 KDI 연구위원은 “소비 침체 극복을 위해선 소비활성화 대책 등 단기 처방보다는 고령층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노후 소득보장체제를 강화하는 등 구조적인 요인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