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스페인 마드리드 카날극장 베르데홀 무대에 오른 국립국악원의 ‘왕의 하루’.  국립국악원 제공
지난 28일 스페인 마드리드 카날극장 베르데홀 무대에 오른 국립국악원의 ‘왕의 하루’. 국립국악원 제공
“퀘 판타스티코(환상적이다).” “부에니시모(아주 훌륭하다).”

지난 28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카날극장 베르데홀. 국립국악원이 유럽에 한국 전통무용을 알리고자 기획한 투어 공연 ‘왕의 하루’가 무대에 올랐다. 화려한 오방색 한복을 입고 머리 장식을 올린 한국 무용수들이 전통 궁중무용을 선보이자 440석을 가득 메운 다양한 연령의 스페인 관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몸짓과 음악은 언어를 뛰어넘었다. 관객들은 한국의 다채로운 전통 무용이 펼쳐질 때마다 다양한 표정으로 무대와 호흡을 같이했다. 봉산탈춤의 익살스러운 장면에서는 웃음을 터뜨렸고, 흰 옷의 무용수가 살풀이춤을 느릿하게 출 때는 숨을 죽였다.

이번 공연은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이 연출하고 이종호 지도단원이 이야기를 구성했다. 전통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을 단순히 나열한 게 아니라 세자로 책봉된 왕자가 왕명에 따라 전국을 다니며 백성의 삶을 살펴보는 스토리에 아홉 편의 춤 무대를 담았다. 궁중의 세자 책봉식 축하연으로 시작한 화려한 궁중무용의 향연이 백성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민속 춤 무대로 이어졌다.

한국 춤에 빠진 마드리드…"판타스티코!" 연발
초반부에선 정악에 맞춘 궁중무용을 선보였다. 큰 북을 가운데 놓고 여러 명이 춤을 추는 ‘무고(舞鼓)’, 3000년에 한 번 열리는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왕에게 바치며 장수를 기원하는 춤인 ‘헌선도(獻仙桃)’, 나라에 경사가 났을 때 왕이 베푼 향연에서 고을 수령들이 춘 ‘진쇠춤’ 무대가 펼쳐졌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왕과 왕비의 춤 ‘태평무’에선 터벌림과 올림채 등 우리 전통음악 특유의 잘게 나뉜 장단을 빠른 발놀림으로 보여줬다.

세자가 백성의 삶을 돌보는 부분은 각 지역 민속춤과 음악으로 꾸몄다. 황해도 봉산군에서 유래한 ‘봉산탈춤’은 특유의 익살과 경쾌하고 활발한 춤사위로 분위기를 띄웠다. 부산·경남의 오광대놀이를 바탕으로 국수호 명인이 재구성한 마당춤 ‘장한가’, 춘향전을 소재로 한 2인무 ‘사랑가’, 고고한 정신을 학처럼 우아한 선비들의 움직임으로 풀어낸 ‘양산사찰학춤’이 이어졌다.

공연 막바지에는 무용수들이 한데 모여 소고와 북, 장구 등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신명’ 무대가 펼쳐졌다. 굿거리 장단에서 시작한 음악이 자진모리와 휘모리장단으로 점점 빨라지자 관객들도 흥에 겨워 어깨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길게 이어졌다.

공연장인 카날극장은 마드리드시가 운영하는 무용 전문 극장으로 마드리드 국제무용제와 해외 유수의 무용단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이번 공연은 예매 시작 2주 만에 전석 매진됐다. 한국 무용을 처음 본다는 대학원생 몬테세랏 마스 씨(25)는 “평소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아 공연장을 찾았다”며 “훌륭한 전통 공연을 보니 한국 영화감독들이 어떻게 뛰어난 예술성을 갖게 됐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가인 페드로 산체스 씨(42)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춤이 아름다운 전통의상과 잘 어우러져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을 더 알고 싶어졌다”고 호평했다.

9월24일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유럽 투어 공연 ‘왕의 하루’는 마드리드와 영국 런던(30일)에 이어 오는 10월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다. 용호성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은 “다채로운 우리 춤에 이야기를 곁들여 전통무용을 처음 보는 외국인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구성했다”며 “이번 투어 공연이 ‘전통 한류’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드리드=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