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향평준화 교육제도를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향평준화 교육제도를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터뷰 내내 격앙돼 있었다. 한국의 미래를 얘기하면서는 “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다. 총체적 위기다”고 말했고, 개혁 과제를 거론할 때는 “혁명하겠다는 각오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 전 장관이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교육 문제를 꺼내자 “내가 이 대목에선 화를 안 낼 수가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교육개혁에 대해서도 “방향이 단단히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입 수학능력시험 폐지 △고교 입시 부활 △대학에 학생 선발권 100% 부여 △사립대 재정지원 중단 등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윤 전 장관은 “교육 당국자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이런 것을 하지 않고선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40년간 경제관료로서 금융감독과 재정당국 수장까지 맡았던 윤 전 장관은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당초 예정된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끝내려 하자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며 다음 일정도 미룬 채 두 시간 넘도록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다.


[이대론 대한민국 미래없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국가 장래 위해 고교평준화 폐지하고 본고사 부활시켜야"
▷한국경제신문의 창간 51주년 설문조사(5000명 대상)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이 “앞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답했습니다. 대다수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문제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총체적 위기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가 올곧게 서지 않았는데 경제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먹고사는 문제가 쉽지 않은데 사회가 잘 돌아갈까요. 지난 반세기 넘도록 급속히 성장한 물질문명과 이에 비해 빈약한 정신 간 갈등에서 비롯된 측면일 수 있습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무슨 일이든 남 탓만 하고 있어요. 우리 미래가 어두운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처절한 자성을 통한 정신적 혁명이 있어야 해요. 지금이 바로 재(再)건국에 나서야 할 때라고 봅니다.”

▷자기반성이 가장 필요한 집단은 어디인가요.

“모두에 책임이 있지만 크기를 따진다면 당연히 정치권이죠. 사회갈등이나 분열을 조장하는 게 우리 정치 현실 아닌가요. 특히 정치 리더십의 실종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대론 대한민국 미래없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국가 장래 위해 고교평준화 폐지하고 본고사 부활시켜야"
“거버넌스(통치체제)부터 바꿔야 합니다. 헌법에는 분명히 대통령 중심제 국가로 돼 있는데 현실의 권력체제는 내각제가 가미된 형태입니다. 지금처럼 국회가 발목을 잡아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면 이게 무슨 대통령 중심제인가요. 3권분립이라는 것도 지켜지고 있습니까.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제왕적 국회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행정부 일을 오래 하면서 느낀 거지만 이로 인해 국가적 자원이 낭비되는 게 너무 큽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4대 분야(공공 노동 금융 교육) 구조개혁의 방향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저성장 해법으로 구조개혁은 시대적 당위입니다. 역대 정부에서 추진 안 한 적이 있었나요. 한 정부에서 모든 걸 다 하겠다고 해선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 정부 남은 임기 동안 4대 개혁을 다 이뤄낸다고 하면 누가 믿습니까. 개혁의 얼개라도 제대로 엮어 다음 정부가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신뢰의 문제에 있습니다.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과연 있나요.”

▷신뢰를 못 받는 이유가 뭔가요.

“따져봅시다. 공공부문을 개혁한다고 공무원연금을 손질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해 국민이 공감합니까. 그렇게 반대하던 공무원 노조는 개혁안이 나온 뒤 조용합니다. 왜 조용할까요. 공무원연금 개혁은 차선도 못 했다고 봅니다. 노동개혁도 마찬가지예요. 대강의 틀만 정해놓고 합의했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합의입니까. 진짜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을 봐도 원칙은 물론 전략도 없어요. 책임 있는 정부라면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안을 짜 국회를 설득해야 하는데, 국회에 공을 넘겨버리고 안은 위원회더러 내놓으라고 합니다. 또 협의체에는 이해당사자까지 다 참여시킵니다. 이래서야 개혁이 되겠습니까.”

▷교육·금융 분야 개혁은 어떻습니까.

“노동개혁의 가장 큰 목표가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는데 청년실업 문제는 노동개혁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교육개혁이 따라붙어야 해요. 학력 과잉으로 노동시장에 공급되는 인력과 실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간 불일치가 심각합니다. 이걸 놔두고 어떻게 청년실업 문제가 풀리나요. 하지만 금융개혁도, 교육개혁도 뭘 하겠다는 건지 방향이 분명하지가 않아요. 그러니 신뢰가 안 간다는 겁니다. 교육 당국자는 관을 세 개 짜놓을 각오를 하고 교육개혁에 임해야 합니다.”

▷얼마 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교육개혁에 매진하겠다면서 대학 구조조정을 얘기했는데요.

“대학 구조조정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개혁과제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좀 더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정책에 철학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영국식 수월성 교육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식 직업인 양성 교육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향 평준화하자는 게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교육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능력과 품성(인성)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두 가지 모두 실패하고 있습니다. 암담해요.”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소위 ‘3불(不) 정책’이라는 것부터 폐지해야 합니다. 고교 등급제와 대학 본고사를 부활시키고 기여입학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고교 등급제만 하더라도 없앤다고 해놓고 과연 없앴나요. 외국어고나 과학고 같은 특수목적고는 왜 있습니까. 말 그대로 특화된 인재 육성을 한다면서 여기 나오면 너도나도 의대나 법대만 갑니다. 대학입시도 그래요. 프랑스에서는 대학입학자격시험 문제에 이런 게 출제됩니다. ‘사랑은 의무인가’ ‘유토피아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가’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나’ ‘인식하지 못한 행복도 행복인가’. 이러니 아무나 대학에 간다는 건 애초 꿈꿀 수도 없습니다. 변별력을 상실한 수능도 없애야 합니다.”

▷결국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온전히 주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100% 줘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당국자들에게 하면 ‘자율권을 줬을 때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대학이 몇 개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그렇다면 학생도 제대로 못 뽑는 대학은 문 닫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립대도 재정 지원을 중단하고 등록금을 자율화해 부족한 재원은 기여입학제로 채우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받아들여질까요.

“다들 미쳤다고 할 겁니다. 이해 집단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저항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포퓰리즘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 지금의 시스템을 가지고 갈 건가요. 담대한 도전과 기업가 정신은 창의와 경쟁에서 나옵니다. 그게 평준화 교육에서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경쟁은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백년대계인 교육이 지금처럼 간다고 생각하면 나라 앞날이 깜깜합니다. 참담해요. 정부가 책임 있게 결단해야 합니다.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로만 교육개혁위원회를 꾸려 교육제도를 송두리째 바꿔야 합니다. 이걸 못 하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습니다.”

■ 윤증현 前 장관은

금융 세제 등의 분야에서 40년간 일해온 정통 경제관료다. ‘시장경제’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금산분리 완화’ 주장을 펼치는 등 소신 발언으로 유명했다. 공직사회에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별명이 ‘따거(큰 형님)’일 정도로 리더십도 있다.

2011년 기획재정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이후 로펌 등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서울 여의도에 개인 연구소를 열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에는 교육개혁에 시쳇말로 ‘꽂혀 있다’고 표현할 만큼 관심이 많다. 좀체 안 하던 외부 강연을 자청해 교육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는 서울대 법대 동기다.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고, 서울대 법대 졸업 △행정고시 10회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세제실 심의관, 금융정책실장 △세무대학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기획재정부 장관 △윤경제연구소 소장(현)

정리=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