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리포트] 저유가로 시추공 폐쇄, 꺼지는 '셰일 붐'…생산성 향상 경쟁 '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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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 혁명 2.0' 준비하는 미국 업계
위기의 셰일
미국 시추공 수 1년새 1000여개↓
파산·해고 줄이어…"좀비업체들 태반"
기회 노리는 셰일
셰일 시추 기술력 진보…시추공 1개 = 32개 맞먹어
원유 생산성 꾸준히 증가…"자동화로 제2혁명 준비"
위기의 셰일
미국 시추공 수 1년새 1000여개↓
파산·해고 줄이어…"좀비업체들 태반"
기회 노리는 셰일
셰일 시추 기술력 진보…시추공 1개 = 32개 맞먹어
원유 생산성 꾸준히 증가…"자동화로 제2혁명 준비"
세계 원유시장에 ‘강펀치’를 날렸던 미국 셰일업체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작년 10월 1609개에 달했던 미국의 원유 시추공은 현재 605개로 1년 새 1000여개 줄었다. 많은 업체가 빚더미에 올랐고 파산과 해고, 투자 축소가 줄을 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이 저유가에도 오히려 생산량을 늘리며 ‘셰일 죽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배럴당 107달러로 연중 최고점을 찍었던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이후 급락해 40달러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PEC이 개별 셰일업체와의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셰일업계 전체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셰일업계는 OPEC과의 ‘제2 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기술 혁신을 통해 계속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면서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맨해튼정책연구소는 “셰일산업은 전통적 에너지산업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기술산업과 같은 선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이른바 ‘셰일 2.0 시대’가 열리면 미국 셰일원유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5~20달러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궁지에 몰린 셰일업계
기세 높았던 셰일 혁명의 바람은 잦아들었다. 미국 전역에서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텍사스주에 있는 인구 6800여명의 작은 마을 퀘로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2009년 마을 근처에서 셰일원유 시추가 시작된 지 6년 만이다. 사라 메이어 퀘로시장은 이달 초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 해 4만대가량의 대형 유조 차량이 마을을 오갔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저유가를 견디지 못한 셰일업체들이 시추를 중단하고 철수하면서다. 마을을 북적거리게 했던 일꾼들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셰일붐을 타고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월세가 비싼 지역으로 꼽히던 노스다코타주의 윌리스턴은 이제 남아도는 집이 처치 곤란인 곳으로 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윌리스턴은 지난 5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소득과 일자리가 늘어난 곳이었다”며 “하지만 셰일붐에 의존했던 지역 경기가 급속하게 가라앉으며 마을 곳곳엔 짓다 만 집이 방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급속한 부동산시장 과열과 붕괴로 셰일붐이 불었던 미국 도시들이 부동산 위기에 직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곳은 셰일업계다. 사모펀드 KKR이 주도한 샘슨리소스컨소시엄이 72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파산한 것을 비롯해 올 상반기에만 16개 업체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아직 ‘살아 있는’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 중형 셰일원유업체인 굿리치페트롤리엄은 부채비율이 600%를 넘는다. 굿리치 측은 자산을 팔면 부채를 갚을 수 있다고 하지만 선뜻 이를 사려는 업체가 없는 게 문제다. 굿리치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모든 셰일원유 시추를 중단했다. 사모펀드 페러렐리소스파트너스의 론 흄 최고경영자(CEO)는 “많은 셰일업체가 좀비(walking dead) 상태”라며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지만 담보물 가치가 떨어지면서 그들은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지도, 자산을 매각하지도 못하는 신세”라고 설명했다.
기술 혁신 바탕 된 셰일 2.0 기대
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지난 1년 동안 시추공은 1000여개가 줄었지만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최근까지 꾸준히 늘었다. 하나의 시추공에서 나오는 생산량이 급증하면서다. 원유 서비스 회사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올초 한 개의 시추공에서 뽑아져나오는 원유는 한 달에 약 17만배럴이었지만 지금은 약 46만배럴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상황이 절박해지면서 셰일업체들이 전력을 다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유가가 떨어지기 전까지 셰일업계에선 공장식 시추가 일반적이었다.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땅을 뚫고 원유를 뽑아내는 데만 신경썼다. 지형과 지하 암반을 고려하지 않아 생산효율이 좋지 않았지만 유가가 배럴당 90~110달러 사이를 오갔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업계는 지형지물을 완벽히 파악한 뒤 최적화된 방법으로 지하에 있는 원유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수직 시추에서 수평 시추로 바뀌는 것도 생산량 증가의 요인이다. 수평 시추는 지하에서 시추 파이프가 양옆으로 구부러지게 해 하나의 시추공으로 최대 32개 수직 시추공과 맞먹는 원유를 뽑아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동식 시추설비’를 통해 한 시추공에서 원유를 뽑아낸 뒤 다음번 시추공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마크 밀스 맨해튼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셰일 붐은 셰일 1.0에 불과했다”며 “기술 혁신과 자동화가 바탕이 된 셰일 2.0이 막 시작되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셰일원유 생산량은 일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 등 비(非)OPEC 국가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내년 50만배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OPEC도 이달 12일 발간한 월간 시장 보고서에서 내년 미국 셰일 원유 생산량이 8년 만에 처음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유가 반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셰일원유의 생산량 감소가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될 뿐 아니라 유가가 반등하면 언제든지 셰일원유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데이미언 코벌린 골드만삭스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미국 셰일원유업체들의 평균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55달러로 추정돼 유가가 60달러를 회복하는 2017년까지는 생산량이 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생산성 개선으로 손익분기점이 10달러 수준까지 떨어질 2020년에는 다시 세계 원유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OPEC이 개별 셰일업체와의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셰일업계 전체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셰일업계는 OPEC과의 ‘제2 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기술 혁신을 통해 계속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면서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맨해튼정책연구소는 “셰일산업은 전통적 에너지산업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기술산업과 같은 선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이른바 ‘셰일 2.0 시대’가 열리면 미국 셰일원유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5~20달러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궁지에 몰린 셰일업계
기세 높았던 셰일 혁명의 바람은 잦아들었다. 미국 전역에서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텍사스주에 있는 인구 6800여명의 작은 마을 퀘로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2009년 마을 근처에서 셰일원유 시추가 시작된 지 6년 만이다. 사라 메이어 퀘로시장은 이달 초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 해 4만대가량의 대형 유조 차량이 마을을 오갔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저유가를 견디지 못한 셰일업체들이 시추를 중단하고 철수하면서다. 마을을 북적거리게 했던 일꾼들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셰일붐을 타고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월세가 비싼 지역으로 꼽히던 노스다코타주의 윌리스턴은 이제 남아도는 집이 처치 곤란인 곳으로 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윌리스턴은 지난 5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소득과 일자리가 늘어난 곳이었다”며 “하지만 셰일붐에 의존했던 지역 경기가 급속하게 가라앉으며 마을 곳곳엔 짓다 만 집이 방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급속한 부동산시장 과열과 붕괴로 셰일붐이 불었던 미국 도시들이 부동산 위기에 직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곳은 셰일업계다. 사모펀드 KKR이 주도한 샘슨리소스컨소시엄이 72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파산한 것을 비롯해 올 상반기에만 16개 업체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아직 ‘살아 있는’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 중형 셰일원유업체인 굿리치페트롤리엄은 부채비율이 600%를 넘는다. 굿리치 측은 자산을 팔면 부채를 갚을 수 있다고 하지만 선뜻 이를 사려는 업체가 없는 게 문제다. 굿리치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모든 셰일원유 시추를 중단했다. 사모펀드 페러렐리소스파트너스의 론 흄 최고경영자(CEO)는 “많은 셰일업체가 좀비(walking dead) 상태”라며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지만 담보물 가치가 떨어지면서 그들은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지도, 자산을 매각하지도 못하는 신세”라고 설명했다.
기술 혁신 바탕 된 셰일 2.0 기대
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지난 1년 동안 시추공은 1000여개가 줄었지만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최근까지 꾸준히 늘었다. 하나의 시추공에서 나오는 생산량이 급증하면서다. 원유 서비스 회사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올초 한 개의 시추공에서 뽑아져나오는 원유는 한 달에 약 17만배럴이었지만 지금은 약 46만배럴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상황이 절박해지면서 셰일업체들이 전력을 다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유가가 떨어지기 전까지 셰일업계에선 공장식 시추가 일반적이었다.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땅을 뚫고 원유를 뽑아내는 데만 신경썼다. 지형과 지하 암반을 고려하지 않아 생산효율이 좋지 않았지만 유가가 배럴당 90~110달러 사이를 오갔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업계는 지형지물을 완벽히 파악한 뒤 최적화된 방법으로 지하에 있는 원유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수직 시추에서 수평 시추로 바뀌는 것도 생산량 증가의 요인이다. 수평 시추는 지하에서 시추 파이프가 양옆으로 구부러지게 해 하나의 시추공으로 최대 32개 수직 시추공과 맞먹는 원유를 뽑아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동식 시추설비’를 통해 한 시추공에서 원유를 뽑아낸 뒤 다음번 시추공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마크 밀스 맨해튼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셰일 붐은 셰일 1.0에 불과했다”며 “기술 혁신과 자동화가 바탕이 된 셰일 2.0이 막 시작되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셰일원유 생산량은 일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 등 비(非)OPEC 국가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내년 50만배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OPEC도 이달 12일 발간한 월간 시장 보고서에서 내년 미국 셰일 원유 생산량이 8년 만에 처음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유가 반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셰일원유의 생산량 감소가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될 뿐 아니라 유가가 반등하면 언제든지 셰일원유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데이미언 코벌린 골드만삭스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미국 셰일원유업체들의 평균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55달러로 추정돼 유가가 60달러를 회복하는 2017년까지는 생산량이 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생산성 개선으로 손익분기점이 10달러 수준까지 떨어질 2020년에는 다시 세계 원유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