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번영의 확산에 관한 디턴의 시각
지난 12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그의 불평등에 대한 연구만 부각되고 있지만,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경제학 전반에 끼친 영향 때문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후생을 증진시키고 빈곤을 줄이는 경제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소비 선택을 이해해야만 하는데, 디턴이 세세한 개인의 선택과 총량 결과를 연결시킨 연구를 통해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은 물론 경제발전론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공헌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이상에 가까운 수요 체계(almost ideal demand system)’의 개발이다. 이것은 디턴이 존 뮬바우어와 함께 1980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 처음 발표한 것으로 소비자 행동을 연구하는 수요 모형이다. 이론적으로 개인의 수요 곡선은 우하향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개인 수요곡선을 모두 합한 곡선이 우하향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총계의 문제점인데, 이 ‘이상에 가까운 수요체계’가 경제이론의 제약조건들을 유지하고 검증하면서 소비자의 총계를 바탕으로 어떻게 수요체계를 추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방식은 오늘날 학계에서는 소비세의 변화 같은 정책이 서로 다른 집단의 후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는 표준도구로 쓰이고 있다.

둘째, 현대 거시경제학에 대한 공헌이다. 자본형성과 경기변동의 정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따른 소득과 소비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총량 소득과 총량 소비를 다루는 소비이론으로는 실제 관계를 잘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디턴은 개인들이 개인소득에 맞춰 소비를 어떻게 조정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복잡한 경제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개인의 개별행동들이 어떻게 연결돼 시장에서의 정교한 상호관계로 이어지는지를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거시경제학도 개개인 개별행동의 기초 위에서 이뤄져야만 의미가 있다. 디턴의 1990년대 연구는 이런 측면에서 이뤄졌고, 그의 접근 방법이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보편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셋째, 빈곤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 방법을 고안한 점이다. 국가 간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역 가능한 품목들은 환율로 전환해 비교할 수 있지만 교역 가능하지 않은 서비스가 소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소비품목과 선호가 국가마다 매우 달라 서로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디턴은 모든 국가의 재화와 서비스를 측정하는 물가지수를 구축, 이것들을 국가 간의 후생을 비교하는 데 사용했다. 이로 인해 경제발전론이 근사치인 거시 데이터에 기초한 영역에서 정교한 미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실증연구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최근에 발간된 《위대한 탈출》에서 디턴은 번영이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어떻게 해서 우리가 지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래 부유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소득 국가에서 탈출해 크게 성장한 국가들도 많으며 전 세계적으로 빈곤이 크게 줄었는데, 그것은 주로 과학적·의학적 지식 등이 확산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물론 불평등이 발생했다.

디턴은 불평등은 동전처럼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양면 중 밝은 면은 성장에서 불평등과 따라잡기로 이어지는 과정이고, 어두운 면은 그 과정이 중간에 사라져 따라잡기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라고 했다. 어느 면이 나타나는가는 정치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정실주의(情實主義)를 우려했다.

정실주의는 정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한 사회에서 많이 발생한다. 정부와 정치 권력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