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하고, 소통하고, 배우고…'명가 회복' 나선 50년 염천교 구두 장인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상인 공동체' 지난달 첫 조직
매주 2~3시간씩 구두 트렌드 수업
공동 브랜드·공동 쇼룸 마련키로
매주 2~3시간씩 구두 트렌드 수업
공동 브랜드·공동 쇼룸 마련키로
“제품 설명을 듣고 싶은데 상인들이 너무 무뚝뚝했어요.” “카드 결제가 안 돼 불편했어요.” “맞춤 수제화인데 생각만큼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사후관리(AS)가 아쉬웠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7시 서울 중림동 주민센터. 김성일 국민대 창업벤처대학원 교수가 ‘염천교 수제화거리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청중은 30~40년간 구두를 제작해온 염천교 구두 장인 30여명. 머리가 희끗희끗한 50~60대인 이들은 탄식을 하는가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메모를 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자기 제품이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들이다. 그랬던 구두 장인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행사장 한편에는 ‘함께 모이자. 함께 토론하자. 함께 살리자’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화려했던 1970~1980년대
서울 염천교 수제화거리는 한때 ‘국내 구두산업의 메카’였다. 1970~1980년대 전국에서 생산되는 구두 대부분을 이곳에서 책임졌다. 하지만 대형 구두 제조사들이 등장하고, 값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오면서 500군데 이상이던 상점은 100여곳만 남았다. 반전의 계기도 있었다. 지난 7월 한 TV 프로그램에서 수제화 명소로 소개한 것. 젊은이와 관광객들이 찾아왔지만 ‘반짝 인기’에 그쳤다. ‘와보니 기대만 못하다’는 불만이 이어진 것. 장인들은 ‘이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염천교보다 늦게 생긴 서울 성수동 구두거리가 ‘수제화 중심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큰 자극이 됐다.
국민대 산학협력단과 서울 중구 보건소가 지원에 나섰다. 서울시도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차원에서 염천교 수제화거리 활성화에 앞장섰다.
첫 모임 때 “우리도 성수동처럼 투자해달라”는 장인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장인 간 소통을 담당한 홍혜정 중구 보건소장은 “홍보와 시설 투자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우리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0여년 만의 첫 공동체인 ‘서울역-염천교 수제화협회’가 지난달 조직됐다. 장인 30여명이 참여했다. 17주 동안 매주 두 번 저녁 때 모이기로 했다. 협회장을 맡은 권기호 미래제화 사장은 “처음에는 각자 생각이 달라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많았다”며 “멀리 보고, 천천히 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첫 결과물이 ‘백(100)구두 프로젝트’다. 구두 100여켤레를 모아 서울역 인근 노숙자들에게 전달했다. 후속 프로젝트도 이어가고 있다. 중구청 등 관공서와 주변 기업체, 지역민을 대상으로 구두 기부에 나섰다.
○24일 염천교 수제화 거리 축제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와 온라인 설문조사 등이 이어졌다. 현재 모습 그대로를 평가받는 시간이었다. 고기황 이태리제화 사장은 “디자인과 싼 가격이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디자인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니 뜻밖이었다”고 말했다.
매주 두세 시간씩 강의도 들었다. 국민대 예술대와 한국제화아카데미, 족부관절협회 등이 수업을 맡았다. △구두 디자인 트렌드 △블로그 마케팅 △소비자 응대 및 매장 디스플레이 등이 주제였다. 일부 장인은 “우리가 최고 구두 전문가인데 무슨 수업을 듣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가 시작됐다. 36년 동안 구두를 만들어온 권혁남 오쏘 사장은 “스스로 만들어 온 틀을 깨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교육을 책임진 이혜경 국민대 예술대학장은 “‘협업’ ‘소통’ ‘배움’ 등이 염천교 상인들 사이에 새로운 DNA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두 장인들은 24일 서울 명동에서 ‘서울역-염천교 거리축제’를 연다. 제품과 과거 구두 제조 도구 등을 전시하고, 점포별 스토리를 녹여낸 영상도 상영할 예정이다. 서울역-염천교 수제화협회는 앞으로 공동 브랜드 및 쇼룸 운영, 디자인 전공 대학생들과의 협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해나갈 계획이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
지난 20일 오후 7시 서울 중림동 주민센터. 김성일 국민대 창업벤처대학원 교수가 ‘염천교 수제화거리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청중은 30~40년간 구두를 제작해온 염천교 구두 장인 30여명. 머리가 희끗희끗한 50~60대인 이들은 탄식을 하는가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메모를 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자기 제품이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들이다. 그랬던 구두 장인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행사장 한편에는 ‘함께 모이자. 함께 토론하자. 함께 살리자’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화려했던 1970~1980년대
서울 염천교 수제화거리는 한때 ‘국내 구두산업의 메카’였다. 1970~1980년대 전국에서 생산되는 구두 대부분을 이곳에서 책임졌다. 하지만 대형 구두 제조사들이 등장하고, 값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오면서 500군데 이상이던 상점은 100여곳만 남았다. 반전의 계기도 있었다. 지난 7월 한 TV 프로그램에서 수제화 명소로 소개한 것. 젊은이와 관광객들이 찾아왔지만 ‘반짝 인기’에 그쳤다. ‘와보니 기대만 못하다’는 불만이 이어진 것. 장인들은 ‘이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염천교보다 늦게 생긴 서울 성수동 구두거리가 ‘수제화 중심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큰 자극이 됐다.
국민대 산학협력단과 서울 중구 보건소가 지원에 나섰다. 서울시도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차원에서 염천교 수제화거리 활성화에 앞장섰다.
첫 모임 때 “우리도 성수동처럼 투자해달라”는 장인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장인 간 소통을 담당한 홍혜정 중구 보건소장은 “홍보와 시설 투자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우리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0여년 만의 첫 공동체인 ‘서울역-염천교 수제화협회’가 지난달 조직됐다. 장인 30여명이 참여했다. 17주 동안 매주 두 번 저녁 때 모이기로 했다. 협회장을 맡은 권기호 미래제화 사장은 “처음에는 각자 생각이 달라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많았다”며 “멀리 보고, 천천히 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첫 결과물이 ‘백(100)구두 프로젝트’다. 구두 100여켤레를 모아 서울역 인근 노숙자들에게 전달했다. 후속 프로젝트도 이어가고 있다. 중구청 등 관공서와 주변 기업체, 지역민을 대상으로 구두 기부에 나섰다.
○24일 염천교 수제화 거리 축제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와 온라인 설문조사 등이 이어졌다. 현재 모습 그대로를 평가받는 시간이었다. 고기황 이태리제화 사장은 “디자인과 싼 가격이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디자인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니 뜻밖이었다”고 말했다.
매주 두세 시간씩 강의도 들었다. 국민대 예술대와 한국제화아카데미, 족부관절협회 등이 수업을 맡았다. △구두 디자인 트렌드 △블로그 마케팅 △소비자 응대 및 매장 디스플레이 등이 주제였다. 일부 장인은 “우리가 최고 구두 전문가인데 무슨 수업을 듣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가 시작됐다. 36년 동안 구두를 만들어온 권혁남 오쏘 사장은 “스스로 만들어 온 틀을 깨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교육을 책임진 이혜경 국민대 예술대학장은 “‘협업’ ‘소통’ ‘배움’ 등이 염천교 상인들 사이에 새로운 DNA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두 장인들은 24일 서울 명동에서 ‘서울역-염천교 거리축제’를 연다. 제품과 과거 구두 제조 도구 등을 전시하고, 점포별 스토리를 녹여낸 영상도 상영할 예정이다. 서울역-염천교 수제화협회는 앞으로 공동 브랜드 및 쇼룸 운영, 디자인 전공 대학생들과의 협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해나갈 계획이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