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첨단IT 접목한 전시·교육은 세계 최고…이웃집 가듯 들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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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10년 맞는 김영나 관장
소장품 7000점 디지털 공개하고 데이터베이스 구축
연내 비컨 적용…스마트폰으로 유물정보 검색 가능
질 높이는 게 더 중요…미국·체코 등 해외 미술 소개
소장유물은 35만점뿐…루브르 등 비해 '조족지혈'
만난 사람=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소장품 7000점 디지털 공개하고 데이터베이스 구축
연내 비컨 적용…스마트폰으로 유물정보 검색 가능
질 높이는 게 더 중요…미국·체코 등 해외 미술 소개
소장유물은 35만점뿐…루브르 등 비해 '조족지혈'
만난 사람=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다음달 15일까지 ‘고대 불교조각대전-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특별전이 열리는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25일 가장 안쪽에 모셔진 국보 제78·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국보 두 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흔치 않기도 하지만 보살상의 얼굴에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의 조명은 하루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 움직인다. 해 뜰 무렵, 한낮, 해질녘의 미소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관람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직하게 탄성을 쏟아냈다.
박물관이 달라졌다. 단순히 유물만 보여주는 것은 옛날 얘기다. 첨단 전시기법과 정보기술(IT)을 동원한 오감체험형 전시는 관람객들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종 앞에 서면 종소리가 들리고, 촛대 앞에 서면 촛불이 타오르는 영상을 보여준다. 박물관 안팎에서는 어린이들이 재잘대며 뛰논다. 가을 풍경을 즐기는 시민들을 보면 공원 같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지 오는 28일로 꼭 10년이다. 1945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해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6·25전쟁 이후 여섯 차례나 이사를 다니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용산시대 10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제 규모 면에서 세계 일곱 번째를 자랑한다. 내용 면에선 어떨까. “이제야 비로소 국가대표 박물관으로서의 모습을 갖췄다”고 자평하는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 그간의 변화와 성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용산 이전 10년을 맞은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전 당시엔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하하. 그때는 박물관이 너무 커서 위압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지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관람객 반응을 조사해 보면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으로 인정받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박물관은 지난해에만 70만명이 방문했는데 이런 수요를 감안하면 미래를 내다보고 잘 지은 거죠.”
▷지난 10년간 가장 크게 변한 게 뭘까요.
“굉장히 개방적인 박물관으로 변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전시공간이 부족해 주로 한국을 주제로 한 전시밖에 할 수 없었어요. 용산 이전 후에는 특별전을 할 수 있는 대형 전시공간이 두 개 생겨서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한국을 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게 됐죠. 요즘 박물관에 가면 볼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은 이렇게 전시 범위를 넓힌 덕분입니다. 박물관 소장품을 고화질로 촬영해 7000점을 공개했고 소장 유물을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도 ‘열린 박물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8년에는 중앙박물관뿐만 아니라 지방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의 연계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하니까 더욱 많은 분이 유물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겠지요.”
▷관람객도 많이 늘었지요.
“2005년 약 134만명이던 관람객이 2007년 228만명으로 늘었고, 2008년 국립박물관의 관람료를 무료화한 이후 지난해에는 353만명이 찾았습니다. 올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주춤했지만 관람객은 꾸준히 늘어날 전망입니다.”
▷외국 유수 박물관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이제야 박물관다워졌습니다. 뭔가 해볼 만해졌다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규모나 관람객 수로는 분명히 10위 안에 들어갑니다. 박물관이 관람객 교육에 들이는 열정과 이에 대한 관람객들의 호응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소장품만 빼고 보면 우리가 선두에 있지 않나 싶어요. 일본의 박물관 관장들은 한국엔 어린이부터 30대까지 젊은 관람객이 많아서 부럽다고들 합니다. 자기네 관람객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라면서요.”
▷소장 유물로는 어떤가요.
“그건 참 아픈 부분입니다. 소장품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박물관의 주요 기능이 보존에서 전시·교육으로 바뀌어 간다고는 해도 기본은 소장과 연구입니다. 얼마 전 중국 베이징의 고궁박물관을 다녀왔는데 좀 속이 상했어요. 소장품이 180만점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박물관엔 35만점가량이 있는데 그나마 반 이상이 도자기·토기 조각이에요. 완전한 것은 많지 않아요. 박물관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선보여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으려면 소장품이 많아야 합니다.”
▷소장품을 늘리려면 예산 지원과 후원이 중요할 텐데요.
“고미술품 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후원을 받아도 몇십억원씩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결국 정부 예산을 받아야 하는데 올해 소장품 구입 예산이 39억원이에요. 좋은 유물 두어 점 사면 끝이죠. 정말로 좋은 유물이 나와도 (돈 때문에) 소심해집니다. 참 쉽지 않은 문제여서 장기적으로 풀어가야죠.”
▷전시 기법이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2011년 제가 부임했을 당시만 해도 전시 디자이너가 3명뿐이었어요. 주로 기획전시실 업무만 봤죠. 하지만 상설전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디자인팀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무기계약직까지 포함해 전시 디자이너가 9명입니다. 예전에는 전시가 점잖다는 느낌을 줬지만 지금은 많이 활발해졌어요. 지난해부터는 유물 진열장도 무반사 유리로 바꿔 아무런 장애물 없이 유물을 직접 보는 느낌을 줍니다.”
▷외국 문명을 소개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들도 주목받았는데요.
“관람객 수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다른 나라 박물관과 교환 전시를 하면 대여료를 주지 않아도 돼 비용 부담이 적습니다. 교환 전시를 계속 활용해 체코, 미국 미술 등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왜 미술 전시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종합박물관이니까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전시를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죠. 이곳을 방문한 외국 박물관 관계자들은 규모에 놀라고 전시 내용에 또 놀란대요.”
▷IT 등을 접목한 디지털 융합형, 체험형 전시가 참 재미있던데요.
“지금 우리 박물관에는 모니터를 이용해 유물을 확대하고, 돌려보는 ‘디지털 돋보기’ 같은 것은 많이 설치돼 있어요. 올해 안으로 비컨(근거리 무선통신)을 적용해 스마트폰으로 유물 정보를 바로 볼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금속공예실에 가면 증강현실(AR) 큐레이터를 이용해 종 앞에 서면 종소리가 들리고, 촛대 앞에 서면 촛불이 타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박물관에 너무 신기술을 적용하면 진품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다는 비판이 있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이런 기술을 접할수록 진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게 될 것입니다.”
▷지방의 12개 국립박물관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지난해 중앙박물관과 지방박물관 총 관람객 수가 870만명입니다. 국민 6명 중 1명은 박물관에 다녀갔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지방 국립박물관도 전시공간 등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김해·전주·부여·나주·청주 박물관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국립나주박물관은 건립 당시 예상 방문객 수가 연간 7만명이었는데 지금은 15만명이 찾습니다.”
▷향후 10년을 바라보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현재를 따라가기도 어려운데 10년 후를 말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우선 소장품을 많이 확보하고 사람들이 더욱 사랑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어야죠. 문화융성의 시대가 되려면 사람들이 박물관을 옆집 들르듯 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박물관에 많이 왔으면 하는 사람들이 예술가입니다. 박물관을 자주 찾다 보면 많은 소재를 발견할 수 있어요. 파리 샤넬 공방에 가면 장인들의 서랍에 17~19세기 문양이 다 들어 있어요. 이걸 그냥 베끼는 게 아니라 여기서 영감을 받는 거죠.”
■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 김재원 박사(1909~1990)의 막내딸이다. 2011년 관장 취임 당시 ‘부녀 박물관장’으로 화제가 됐다. 언니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73)는 한국 불교미술의 권위자여서 그야말로 ‘문화재 가족’이다. 김 관장은 “아버지에겐 박물관이 전부였다”며 “역대 중앙박물관장 대부분이 어릴 적 집에서 손님으로 맞았던 분들이라 친숙하다”고 했다.
그는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만 했지 이렇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박물관장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사람의 앞일은 정말 알 수 없다”고 했다. 박물관의 해묵은 숙제였던 소장 유물 전면 조사에 착수한 것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발전은 물론 부친의 유지를 계승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1951년 서울 출생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미술사학 석·박사 △덕성여대 서양화과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서울대 박물관장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 △국립중앙박물관장(현)
정리=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박물관이 달라졌다. 단순히 유물만 보여주는 것은 옛날 얘기다. 첨단 전시기법과 정보기술(IT)을 동원한 오감체험형 전시는 관람객들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종 앞에 서면 종소리가 들리고, 촛대 앞에 서면 촛불이 타오르는 영상을 보여준다. 박물관 안팎에서는 어린이들이 재잘대며 뛰논다. 가을 풍경을 즐기는 시민들을 보면 공원 같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지 오는 28일로 꼭 10년이다. 1945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해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6·25전쟁 이후 여섯 차례나 이사를 다니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용산시대 10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제 규모 면에서 세계 일곱 번째를 자랑한다. 내용 면에선 어떨까. “이제야 비로소 국가대표 박물관으로서의 모습을 갖췄다”고 자평하는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 그간의 변화와 성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용산 이전 10년을 맞은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전 당시엔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하하. 그때는 박물관이 너무 커서 위압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지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관람객 반응을 조사해 보면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으로 인정받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박물관은 지난해에만 70만명이 방문했는데 이런 수요를 감안하면 미래를 내다보고 잘 지은 거죠.”
▷지난 10년간 가장 크게 변한 게 뭘까요.
“굉장히 개방적인 박물관으로 변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전시공간이 부족해 주로 한국을 주제로 한 전시밖에 할 수 없었어요. 용산 이전 후에는 특별전을 할 수 있는 대형 전시공간이 두 개 생겨서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한국을 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게 됐죠. 요즘 박물관에 가면 볼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은 이렇게 전시 범위를 넓힌 덕분입니다. 박물관 소장품을 고화질로 촬영해 7000점을 공개했고 소장 유물을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도 ‘열린 박물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8년에는 중앙박물관뿐만 아니라 지방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의 연계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하니까 더욱 많은 분이 유물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겠지요.”
▷관람객도 많이 늘었지요.
“2005년 약 134만명이던 관람객이 2007년 228만명으로 늘었고, 2008년 국립박물관의 관람료를 무료화한 이후 지난해에는 353만명이 찾았습니다. 올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주춤했지만 관람객은 꾸준히 늘어날 전망입니다.”
▷외국 유수 박물관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이제야 박물관다워졌습니다. 뭔가 해볼 만해졌다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규모나 관람객 수로는 분명히 10위 안에 들어갑니다. 박물관이 관람객 교육에 들이는 열정과 이에 대한 관람객들의 호응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소장품만 빼고 보면 우리가 선두에 있지 않나 싶어요. 일본의 박물관 관장들은 한국엔 어린이부터 30대까지 젊은 관람객이 많아서 부럽다고들 합니다. 자기네 관람객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라면서요.”
▷소장 유물로는 어떤가요.
“그건 참 아픈 부분입니다. 소장품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박물관의 주요 기능이 보존에서 전시·교육으로 바뀌어 간다고는 해도 기본은 소장과 연구입니다. 얼마 전 중국 베이징의 고궁박물관을 다녀왔는데 좀 속이 상했어요. 소장품이 180만점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박물관엔 35만점가량이 있는데 그나마 반 이상이 도자기·토기 조각이에요. 완전한 것은 많지 않아요. 박물관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선보여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으려면 소장품이 많아야 합니다.”
▷소장품을 늘리려면 예산 지원과 후원이 중요할 텐데요.
“고미술품 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후원을 받아도 몇십억원씩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결국 정부 예산을 받아야 하는데 올해 소장품 구입 예산이 39억원이에요. 좋은 유물 두어 점 사면 끝이죠. 정말로 좋은 유물이 나와도 (돈 때문에) 소심해집니다. 참 쉽지 않은 문제여서 장기적으로 풀어가야죠.”
▷전시 기법이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2011년 제가 부임했을 당시만 해도 전시 디자이너가 3명뿐이었어요. 주로 기획전시실 업무만 봤죠. 하지만 상설전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디자인팀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무기계약직까지 포함해 전시 디자이너가 9명입니다. 예전에는 전시가 점잖다는 느낌을 줬지만 지금은 많이 활발해졌어요. 지난해부터는 유물 진열장도 무반사 유리로 바꿔 아무런 장애물 없이 유물을 직접 보는 느낌을 줍니다.”
▷외국 문명을 소개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들도 주목받았는데요.
“관람객 수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다른 나라 박물관과 교환 전시를 하면 대여료를 주지 않아도 돼 비용 부담이 적습니다. 교환 전시를 계속 활용해 체코, 미국 미술 등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왜 미술 전시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종합박물관이니까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전시를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죠. 이곳을 방문한 외국 박물관 관계자들은 규모에 놀라고 전시 내용에 또 놀란대요.”
▷IT 등을 접목한 디지털 융합형, 체험형 전시가 참 재미있던데요.
“지금 우리 박물관에는 모니터를 이용해 유물을 확대하고, 돌려보는 ‘디지털 돋보기’ 같은 것은 많이 설치돼 있어요. 올해 안으로 비컨(근거리 무선통신)을 적용해 스마트폰으로 유물 정보를 바로 볼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금속공예실에 가면 증강현실(AR) 큐레이터를 이용해 종 앞에 서면 종소리가 들리고, 촛대 앞에 서면 촛불이 타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박물관에 너무 신기술을 적용하면 진품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다는 비판이 있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이런 기술을 접할수록 진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게 될 것입니다.”
▷지방의 12개 국립박물관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지난해 중앙박물관과 지방박물관 총 관람객 수가 870만명입니다. 국민 6명 중 1명은 박물관에 다녀갔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지방 국립박물관도 전시공간 등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김해·전주·부여·나주·청주 박물관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국립나주박물관은 건립 당시 예상 방문객 수가 연간 7만명이었는데 지금은 15만명이 찾습니다.”
▷향후 10년을 바라보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현재를 따라가기도 어려운데 10년 후를 말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우선 소장품을 많이 확보하고 사람들이 더욱 사랑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어야죠. 문화융성의 시대가 되려면 사람들이 박물관을 옆집 들르듯 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박물관에 많이 왔으면 하는 사람들이 예술가입니다. 박물관을 자주 찾다 보면 많은 소재를 발견할 수 있어요. 파리 샤넬 공방에 가면 장인들의 서랍에 17~19세기 문양이 다 들어 있어요. 이걸 그냥 베끼는 게 아니라 여기서 영감을 받는 거죠.”
■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 김재원 박사(1909~1990)의 막내딸이다. 2011년 관장 취임 당시 ‘부녀 박물관장’으로 화제가 됐다. 언니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73)는 한국 불교미술의 권위자여서 그야말로 ‘문화재 가족’이다. 김 관장은 “아버지에겐 박물관이 전부였다”며 “역대 중앙박물관장 대부분이 어릴 적 집에서 손님으로 맞았던 분들이라 친숙하다”고 했다.
그는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만 했지 이렇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박물관장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사람의 앞일은 정말 알 수 없다”고 했다. 박물관의 해묵은 숙제였던 소장 유물 전면 조사에 착수한 것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발전은 물론 부친의 유지를 계승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1951년 서울 출생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미술사학 석·박사 △덕성여대 서양화과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서울대 박물관장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 △국립중앙박물관장(현)
정리=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