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두 교수의 ‘싱그러운 폭죽’
김선두 교수의 ‘싱그러운 폭죽’
한국화가 김선두 중앙대 교수(57)는 최근 들어 한지를 여러 겹 붙이고 그 위에 색을 여러 번 덧칠한 뒤 형상을 잘라내는 콜라주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린다기보다는 떼어내는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 수묵화의 현대화를 실험하고 있는 것. 이른바 ‘콜라주 수묵’이다.

수묵화의 발묵 효과를 현대적인 기법으로 되살려낸 김 교수를 비롯해 ‘철판 수묵화가’ 조환(57), ‘먹의 화가’ 김호득(65)과 중국의 장위(57), 웨이칭지(45) 등 5명이 참여한 ‘한국과 중국의 당대수묵(當代水墨)’전이 29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수묵화 하면 떠오르는 고답적 이미지를 탈피해 전통의 수용과 혁신이라는 공통과제와 씨름하고 있는 양국의 실력파 화가 5명이 선보이는 대형 기획전이다.
29일 개막한 학고재갤러리의 가을 기획전 ‘한국과 중국의 당대수묵’에 참여한 김선두(왼쪽부터) 조환 김호득 웨이칭지 장위. 학고재갤러리 제공
29일 개막한 학고재갤러리의 가을 기획전 ‘한국과 중국의 당대수묵’에 참여한 김선두(왼쪽부터) 조환 김호득 웨이칭지 장위. 학고재갤러리 제공
2000년대 들어 현대문명의 산물인 철을 매개로 작업해온 조환은 수묵의 필선을 3차원 공간으로 승화한 대형 설치작품을 내놓았다. 불교의 ‘반야심경(般若心經)’ 266자를 쓴 철판 캔버스 앞에 사바세계를 넘어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배치한 작품으로 수묵화의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조명을 받아 용선에 은은하게 드리워진 철판 위의 글씨가 배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로 읽힐 수 있다”며 “드러내는 가시적인 것보다 그 안에 담은 피안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5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40년 가까이 수묵의 현대적 실험에 매달려온 김호득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전통적 묵법을 대범하고 독창적으로 구사해 현대적 표상으로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완성해 왔다. 일필휘지로 그려낸 필선의 힘으로 현대인의 정신과 물질성을 추상적으로 묘사한 작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적 수묵화가 장위의 예술적 열정도 만날 수 있다. 손가락 지문을 꾹꾹 눌러 그린 점묘화 ‘지인(指印)’ 시리즈는 전통 중국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현대적 수묵화의 참맛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국의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신체를 활용한 행위예술”이라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시간과 순환하는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생동감 있는 리듬으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수묵화와 현대인의 일상을 접목한 웨이칭지의 작품도 여러 점 나온다. 미국의 할리우드 문화를 팝아트 형식으로 승화한 수묵화에선 익살의 멋을, 퓨마와 소년을 소재로 한 작품에선 중국 사회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동시대 아시아 수묵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하며 전시를 기획했다”며 “전통 수묵에서 출발한 작가들이 전통적 재료와 방법, 주제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이미지 설치, 회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