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기회로 삼아 이겨냈던 한국 기업들이 말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의 부진에도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서 선전해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부진과 현지 기업들의 성장으로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텃밭이었던 신흥국 시장에서도 점차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경닷컴이 창간 16주년을 맞아 한국 기업들이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봤다. [편집자 주]

[ 오정민 / 김아름 / 김봉구 기자 ] 국내 유통기업들이 최근 동남아 지역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세계의 시장' 중국에서 쓴 맛을 본 유통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동남아를 택한 것이다. 동남아 시장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많은 인구 등 중국 시장 못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기업이 중국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 보다 튼실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경쟁력을 갖춰야 해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면밀한 현지화 전략, 한류를 이용한 고급화 전략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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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마트·백화점, 중국서 '고전'…中손실, 롯데 경영권 분쟁 쟁점으로도 등장

국내 대다수 유통기업이 최우선적으로 공략한 해외시장은 중국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빠른 경제성장 속도, 막대한 인구로 시장 전망이 밝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유통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자생력 강한 현지기업들의 텃세가 거셌다. 이에 더해 현지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과 함께 기존 오프라인 업체들의 수익성은 악화됐다.

한국 유통기업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표적인 유통 대기업집단인 롯데그룹의 경우 최근 발생한 경영권 분쟁의 주요 쟁점으로 중국 사업 손실이 등장할 정도였다.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1997년 상하이에 1호점을 연 이후 한때 매장 수를 27개까지 늘렸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적자 폭이 커지며 매장을 정리, 현재는 8개만 남긴 상태다. 중국 이마트는 2011년 111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매년 수백억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261억원의 적자를 봤다.

롯데그룹은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마트와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규모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08년 중국 유통업체 인타이그룹과 합작해 베이징 왕푸징에 러티엔인타이백화점을 열며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백화점은 4년간 1135억원 적자를 내며 문을 닫았다. 현재는 톈진, 웨이하이, 청두, 션양 등 지역에서 4곳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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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도 2007년 네덜란드 계열 마크로의 현지 점포를 인수하며 중국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09년에는 중국 유통기업 타임스를 인수, 단기간에 유통망을 확장했다. 지난해 114개까지 점포를 늘렸으나 최근에는 산둥성 내 5개 점포를 폐점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홍성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롯데마트의 ) 해외 할인점 사업의 영업손실은 2012년 400억원에서 지난해 1410억원으로 확대됐다"며 "당분간 부실 점포를 계속 정리할 전망이어서 점포수는 추가로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유통 관련 기업 중 중국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CJ오쇼핑 등 홈쇼핑과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업계다. 음식료 기업도 중국에 힘을 쏟았지만 오리온 등 일부를 제외하면 성과는 미미했다.

◆ 동남아서 볕들 날 찾는 국내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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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어려움을 겪은 유통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세안(ASEAN·동남아 10개국 협력체)의 경우 인구 6억명, 국내총생산(GDP) 2조4000만달러에 달하는 거대 경제권이기 때문이다. 동남아는 연평균 경제성장률 6~7%로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진출하기에는 한류 붐이 일고 있는 현 시점이 적기라는 분석이다.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비추는 한국 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롯데마트와 CJ오쇼핑, GS홈쇼핑 등 채널을 비롯해 프랜차이즈 전문인 SPC그룹, MPK그룹 등이 진입했다. 커피 프랜차이즈도 동남아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2008년 마크로 점포를 인수하면서 진입한 인도네시아에서 39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에는 11개 점포를 열어 주요 거점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마트도 올해 말 베트남 호찌민에 첫 매장을 낸다는 계획이다. 5년 내 14개 점포를 내는 게 목표다.

홈쇼핑도 동남아 개척에 적극 나섰다. GS홈쇼핑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 나가있다. CJ오쇼핑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에 진출한 상태다.

CJ푸드빌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뚜레쥬르를 선봉으로 동남아에 진입했다. 뚜레쥬르는 베트남 진출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에 매장을 열었다. 특히 베트남 30개 매장은 베이커리 브랜드 중 매장 수와 매출에서 모두 1위이다. 투썸플레이스, 비비고 등 브랜드도 동남아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SPC그룹은 2012년 베트남 호찌민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냈고, 지난해는 국내 외식업체 중 처음으로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매장을 개점했다.

◆ "유통, 면밀한 현지화·차별화 아쉬워…브랜드 갖춰야"

국내 유통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것은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한국유통학회장)은 "중국 유통시장에는 사실상 숨겨진 관세가 존재하고, 도매상이 만만치 않은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며 "자국기업에 유리하도록 숨겨진 규제를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달영 충북대학교 교수는 "현지인들의 요구를 파악, 적합한 상품구조를 갖춰 현지화에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남아 지역에서 보다 면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동남아 시장에서 브랜드를 통한 고급화 전략이 유리할 것이라는 조언도 나왔다. 한류와 함께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커져서다. 안승호 유통학회장은 "유통기업 역시 개별 제품부터 시작해 기업 브랜드 강화해 차별화된 브랜드를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김주권 건국대학교 교수는 "국내 유통기업의 전략이 새로운 시장이나 제품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며 "사업 성과를 내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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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민·김아름·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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