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자 1랩] 여사님, 야쿠르트 배달 제가 해보겠습니다
[ 김아름 기자 ] 최대 시속 8km, 요구르트 3300개가 들어가는 냉장 시스템, 전기 충전 배터리. 글로 본 한국야쿠르트 신형 전동카트의 내부사양(스펙)이다.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겠구나" 머리로는 대충 이해가 됐다.

그런데 시속 8km가 빠른 건지, 요구르트 3300개가 정말 다 들어가는지, 전기 충전 배터리는 넉넉할 지 궁금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을 이해시키는 방법은 하나 뿐. 그래서 외쳤다.

"제가 한 번 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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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새벽 6시 30분. 해도 미처 다 뜨지 않은 시간.

한국야쿠르트 서초점은 몹시 분주할 거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트럭들이 요구르트를 내리고 카트에 옮겨 싣는 광경을 상상했다.

늘 그렇듯, 현실은 이론과 달랐다. 냉장 시스템이 갖춰진 신형 전동 카트는 오늘의 물량을 가득 채운 채 여사님(한국야쿠르트는 유제품 배달직원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동카트는 상단에 3개, 측면에 1개 냉장 칸을 갖고 있다. 총 용량은 220L. 요구르트(65mL) 3300개를 담는다지만 이는 용기 빼고 내용물만 넣었을 때 가능했다. 실제 용량이 더 큰 제품도 많이 팔기 때문에 1000여개를 싣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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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동카트는 경력 10년의 베테랑 여사님 강경숙 씨(46)를 태웠다. 최대 시속은 8km. 걷는 속도의 약 2배다. 실제로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강 여사님 담당 29구역까지는 약 800m 거리. 도보로 12분 거리를 여사님을 태운 채 5분 만에 주파했다.

1차 코스부터 돌았다. 17층 아파트 중 6개 층 배달. 한 층마다 2~3가구가 유제품을 시켜먹는다. 강 여사님은 어떤 층, 어느 집이 무슨 요구르트를 주문하는지 전부 외우고 있다. 10년 차 베테랑은 한 번도 집을 착각하거나 다른 상품을 넣지 않았다.

전동카트의 존재가치는 이어진 오르막길에서 빛났다. 대부분 중장년인 야쿠르트 여사님에게 오르막은 그냥 걸어도 고되다. 전동카트가 없던 시절에는 손수레를 끌고 올랐던 길. 여사님을 태운 탑승형 전동카트는 토끼를 이긴 거북이처럼 '묵묵히' 오르막을 달렸다.

기자가 직접 운전해 본 전동카트의 느낌은 ‘세발자전거보다 운전하기 쉬운 차’였다.

기어는 후진(R)-중립(N)-전진(D) 3개. 특징은 자전거의 양쪽 브레이크 손잡이를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로 쓴다는 점. 여사님들이 오토바이식 운전대보다 자전거에 더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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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엑셀러레이터 손잡이를 손아귀에 쥐면 출발하고, 놓으면 바로 멈춘다. 속도가 느리다보니 엑셀러레이터만 놓아도 브레이크를 잡은 듯 즉시 멈춘다. 왼쪽 브레이크 손잡이를 쓸 일은 많지 않았다. 좌우 이동도 자전거 수준 난이도다. 서서 타는 구조지만 불편하거나 중심을 잃을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

기어는 후진이 위, 전진이 아래쪽이다. 이유는 안전이다. 오르막길에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게 되는데, 이 때 정면에 놓인 기어 버튼을 아래로 누르는 경우가 생긴다. 만약 아래쪽 후진 버튼을 잘못 누른다면 오르막에서 갑자기 후진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한다.

사실 배경 설명을 들을 때는 ‘에이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 하고 웃었다. 그런데 실제 오르막에서 몸을 기울이다가 아래 버튼을 누르게 됐다. 수차례 현장 테스트를 거쳐 완성된 제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누를 일 없도록 기어 버튼을 더 위에 배치하면 좋겠다고도 싶었다.

이날 오전 강 여사님은 오전 6시 30분부터 11시 15분까지 약 5시간 동안 아파트와 상가, 오피스텔 등 50여곳을 돌았다. 강 여사님이 이 구역 내에 맡고 있는 배달 가구는 500곳에 달한다. 집집마다 요일마다 배달 품목은 다르다.

기자가 스마트폰 내 위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측정한 이날 오전 전동카트의 총 이동 거리는 3.14km였다. 100%에서 출발한 배터리는 아직도 70% 이상 남았다. 1회 충전으로 이틀은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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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일과는 ‘지역구 관리’. 날이 좋을 때는 길에 잠깐 카트를 세워도 요구르트를 사러 오는 손님이 있다. 하지만 이 날처럼 갑자기 추워지면 발걸음이 뜸하다. 주변 상가를 돌며 인사를 나누고 티 타임을 갖다보니 어느덧 오후 1시 30분. 퇴근 시간이었다.

여사님들은 한 번 지역을 배정받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역을 바꾸지 않는다.

오랜 기간 한 동네에서 친분을 쌓고, 소통해야 믿음이 굳건해지는 법이다. 강 여사님이 10년 동안 늘 이 곳에서 배달을 하는 이유기도 했다.

요구르트 여사님이 나타나면 낯익은 동네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들였다. 전동카트를 신기해 하는 아이도 뛰어나와 인사했다. 배달의 핵심도 사람이고, 신뢰였다.

요구르트 여사님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6.8시간. 평균 근속연수는 9.8년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속 기간은 5.6년. 중소기업 근로자 평균 근속 연수는 4.9년, 대기업은 10.7년이었다. 그나마 남성 근로자는 6.7년이지만 여성은 4.3년에 불과했다. 육아, 살림 등 제약 탓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조사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짧은 근속 연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에 비하면 여사님의 근속 연수 9.8년은 중장년층 여성임에도 대기업 수준에 버금 간다.

탑승형 전동카트는 여사님들의 근로시간은 줄이고, 근속연수는 늘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전동카트의 가장 뛰어난 스펙은 속도도, 냉장고도 아닌, 여사님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었다.

“역시,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있다"는, 기자에게 체험은 신성하다는 점을 다시 느꼈다.

한국야쿠르트에 따르면 탑승형 전동카트는 2014년 12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000여 대가 보급됐다. 2017년까지 1만대를 보급할 예정이다. 총 예산은 900억원. 식음료 업계에서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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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책임= 김민성 기자, 연구= 장세희 기자 ss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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