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인들의 호소] 중견기업은 공공조달시장 참여 제한…5년간 328개사 중소기업으로 '유턴'
현재 중견기업을 규제하는 법령과 개별 제도는 무려 100개에 달한다. 중견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지난해 특별법(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했지만 여전히 많은 법령과 규제가 특별법과 배치된다. 중견기업연구원은 공공조달시장 ‘판로 규제’, 중소·중견기업 간 ‘차별 규제’, 중소기업이 아니면 대기업으로 간주하는 ‘법령 규제’를 없애야 할 3대 철폐 규제로 꼽았다.

중견기업들이 가장 시급한 대상으로 꼽는 것은 판로규제 폐지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공공조달시장에서 중견기업은 참여 자체를 제한받는다. 가구,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아스콘 등 207개 품목을 정부가 ‘중소기업 간 경쟁품목’으로 지정한 탓이다.

원자력 발전기 부품을 생산하는 BHI는 정부로부터 연구개발(R&D) 자금을 받아 제품을 개발했으나 정작 판로를 뚫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규모가 커지자 공공조달 시장에 못 들어갔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회사를 나누는 사례도 있다. 수도권의 한 중견 아스콘업체 사장은 “업종 특성상 물류비가 많이 들어 해외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민간시장은 신규 진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쪼갰다”고 털어놨다. 공공조달 시장 참여를 위해 중견기업 지위를 포기하고 중소기업으로 되돌아갔다는 얘기다. 중견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최근 5년간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다시 돌아간 기업은 총 328곳에 이른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도 중견기업의 판로를 옥죄고 있다. 오랜 기간 한 분야에서 성장한 전문 중견기업들이 중소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업 철수, 축소 등의 압박을 받고 있다. 공공소프트웨어 시장의 국내 중견기업 참여비중은 3%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적합업종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계 한국 지사가 국내 공공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밥솥시장 1위인 쿠쿠전자의 구본학 사장은 “TV 홈쇼핑조차 중소기업 의무편성 비율이 있어 전문 중견기업이 차별을 받는다”며 “중국산 제품을 떼다 단순히 파는 중소기업이 혜택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