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대 로마인들도 '소셜 미디어'로 생각 공유했다
키케로는 기원전 51년 로마를 떠나 시칠리아로 향했다. 그는 로마가 지배하는 시칠리아에서 집정관 직을 수행하면서도 로마의 정계 소식을 알고 싶었다. 친구에게 일일관보 사본을 매일 보내달라고 부탁한 이유였다. 로마 광장에 게시되는 관보 ‘악타 디우르나’에는 정치 토론과 법안 요약, 출생·사망 등 주요 정보가 담겨 있었다. 당시 로마 소식이 서쪽 브리타니아까지 가는 데는 5주, 동쪽 시리아까지 가는 데는 7주가 걸렸다.

‘소셜미디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다. 하지만 사회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소셜미디어가 있었다. 시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 소셜미디어는 자기표현과 홍보의 창구이자 혁신의 시발점이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편집장인 톰 스탠디지는 《소셜미디어 2000년》에서 인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변화를 여러 시대에 걸쳐 다뤘다.

글쓰기 용품을 들고 있는 부부를 그린 폼페이 프레스코화. 열린책들 제공
글쓰기 용품을 들고 있는 부부를 그린 폼페이 프레스코화. 열린책들 제공
1500년대 유럽에는 필사본 공유 문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필기장에 문집과 선집, 비망록 등의 인상적인 문구를 베껴 적었다. 개인이 간직하기도 했지만 가족이나 친구가 돌려 읽기도 했다. 좋아하는 시나 금언을 지인들과 공유하며 성격과 취향 등 자신을 드러내는 데 활용한 것이다. 오늘날 SNS에 프로필과 글을 올려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소셜 플랫폼은 그 등장만으로도 유통되는 정보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아랍에서 유래해 17세기 중엽 서유럽의 정보 공유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꾼 커피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출신 배경과 관계없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찾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미디어를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공론장이 탄생한 것이다. 같은 시기 등장한 학술지도 멀리 떨어져 있는 학자들 사이의 교류를 촉진했다.

소셜미디어의 신뢰도에 대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1618년 유럽에서 30년전쟁이 발발해 해외 뉴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코란토’라는 새로운 간행물이 탄생했다. 전투와 주요 사건에 대한 편지와 목격담을 양면으로 인쇄한 신문이었다. 익명으로 발행되던 이 간행물의 신뢰성에 대한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미디어에 대한 규제 역시 역사가 오래됐다. 1747년 출간된 《코피앙의 왕 제오키니줄 이야기》는 루이 15세와 그 정부(情婦)들의 얘기를 먼 나라 얘기처럼 꾸민 ‘로망 아 클레’(실존 인물의 이름을 바꿔서 쓴 소설)였다. 프랑스 군주제가 위기를 겪으며 무수한 소책자가 발행·유통돼 정부의 규제가 철저해졌지만 로망 아 클레처럼 비밀리에 유통돼 감시망을 빠져나간 미디어도 있었다.

저자는 시대별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의 본질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전신술(電信術)의 발달 이전까지는 유럽, 이후에는 유럽과 북미에 치중한 소셜미디어의 역사만 담았다는 점은 아쉽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