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파리를 달군 막춤
한 달 전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테아트르드라빌 극장. 유럽 최고로 꼽히는 이 컨템퍼러리극장이 1000여명의 관객으로 만석을 이룬 가운데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의 ‘막춤’이 펼쳐졌다. 아저씨들은 거실 소파의 아버지처럼 편안하게 러닝셔츠만 걸쳤다. 불룩 튀어나온 배는 금세 중년임을 짐작하게 했다. 아줌마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국 어머니표 짧은 커트에 ‘뽀글파마 머리’를 했다. 춤사위라고 해야 동네잔치 때 자주 봤을 법한 정도였지만 표정만큼은 파리의 가을 하늘처럼 밝았다.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의 하나로 펼쳐진 안은미 댄스컴퍼니의 파리 공연 현장 풍경이 그랬다.

지난달 24~25일 서울 북서울꿈의숲에서 전국생활문화제가 열렸다. 전국생활문화제는 각 지역 생활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한 동호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다. 생활문화센터는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문화예술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주거지 주변의 이 공간에서 동호회원들은 각자 원하는 생활문화 활동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요즘 말로 ‘버스킹(busking:길거리에서 하는 노래·연주) 무대’에 선 할머니들의 연주가 수준급이었다. 무대 주위로 몰려든 관람객도, 산책 나온 동네 주민도 다같이 어울려 어깨를 들썩였다.

독일의 전설적 안무가 피나 바우슈는 “춤은 특별한 교육 없이도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박수를 받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흥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작은 몸짓’도 얼마든지 춤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안은미 역시 표현수단의 하나로 일반인의 신체를 주목하고 각 계층의 표현방식을 제시하며 ‘동시대 대한민국 읽기’를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유럽 최고의 극장에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춤사위가 기립박수를 받았다.

예술의 향유를 넘어 예술의 생산에 대한 일반 사람의 욕구가 커지고 있다. 예술분야에서도 소비자와 생산자 역할을 동시에 하는 ‘프로슈머’가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문화와 예술을 격식 차리고 시간을 내야만 즐길 수 있는 ‘우아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란 일상 속에서 즐기는 취미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예술이란 그런 소소한 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가치가 아닐까 한다. 어느 누가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아줌마, 아저씨의 막춤이 주목받을지 예상했을까. 생활예술 확대 및 문화 참여 욕구는 그런 점에서 바람직하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돼 함께 즐기는 문화가 확산될 때 삶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다.

김선영 <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