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이 1년 새 100조원 넘게 급증해 1200조원에 다가섰다. 저금리와 부동산 활황 속에 경제 규모 대비 가계빚은 어느새 신흥국 최고 수준이 됐다. 다음달 미국의 금리 인상이 유력한 만큼 긴장감이 높다. 한국 경제의 취약한 고리인 가계부채가 위기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 때문이다.
'경제 시한폭탄' 가계 빚 1200조 육박
○3분기 증가폭 또 최고치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가계빚은 1166조374억원으로 나타났다. 2분기 말 1131조5355억원보다 34조5019억원(3.0%) 증가한 수치다. 분기별 증가폭으로는 지난 2분기(33조2000억원)에 이어 다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빚은 작년 3분기 말(1056조4415억원)과 비교해 1년 새 109조5959억원(10.4%) 급증했다.

은행의 가계대출이 전분기보다 14조3000억원 증가했다. 증가폭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로 3분기에만 11조5000억원 급증했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비(非)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도 6조3000억원 늘었다.

결제 전 신용카드 사용금액 등 가계가 물품 구매 과정에서 진 빚(판매신용)도 3분기에 3조9000억원(6.6%)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위축됐던 가계 소비가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등으로 늘어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속도라면 연말에 가계빚 12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13년 4분기 1000조원을 넘어선 뒤 2년 만에 20%라는 급증세를 기록하게 된다.

○늘어난 빚이 경기 발목 잡나

빚 급증의 배경엔 사상 초유의 저금리(기준금리 연 1.5%)가 있다. 작년 8월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풀리면서 대출 받기도 과거보다 쉬워졌다. 저금리로 전셋값이 오르자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가계가 늘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18개 신흥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이 84%(1분기 기준)로 가장 높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미국이 예상대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 신흥국 부채가 금융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부채는 소비에 직접 영향을 준다”며 “가계소득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자부담이 늘면 경기 회복이 더 느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이 체감하는 주택가격은 연소득의 12.8배였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실제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평균 5.7배를 뛰어넘는다. 월세 거주자의 체감 주택값은 14.7배에 달해 이들의 소비 여력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변동에 더욱 취약

일부에선 가계부채 염려가 지나치다고도 말한다. 가계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지난 3월 말 226.7%로 지난해 9월 말보다 3.8%포인트 올랐다. 건전성이 개선됐다는 의미다. 지하경제를 감안했을 때 GDP 대비 가계빚 비중은 낮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가계빚의 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제2금융권 대출이 늘어난 것은 위험 신호”라며 “담보 여력이 없는 자영업자들이 부족한 사업자금을 충당하려고 빚을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금리가 오르면 금융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가운데 고정금리는 29.7%(9월 말 기준)에 불과해 금리 변동에 취약한 구조다.

김유미/황정수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