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회계사(AICPA) 자격증을 딴 김모씨(38)가 최근 한국 공인회계사(KICPA) 자격증이 있는 것처럼 속인 혐의(공인회계사법 위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검찰은 관련 사건을 접수하고 배당 절차에 들어갔다. 외국 회계사가 회계사 명칭 사용 문제로 검찰에 고발된 것은 이례적이다. 공인회계사법은 국내 공인회계사가 아닌 사람이 공인회계사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외국 회계사는 자격증을 딴 해당 국가를 명시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표면상으로는 회계사 명칭 문제가 발단이 됐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미국 회계사 자격증 보유자들이 국내 회계사의 직역을 침범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AICPA 자격증 보유자들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 KICPA 자격증 보유자에게만 허용한 기업감사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인회계사법 40조 3에 따르면 외국 공인회계사는 원자격국의 회계법과 회계기준에 관한 자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제회계법과 국제회계기준에 관한 자문만 할 수 있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의 한 공인회계사는 “미국 회계사들이 감사 업무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며 “회계감사 조서를 쓰는 등 중요 업무를 맡는 경우도 많지만 법률 위반 문제로 감사보고서에 서명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법률 위반을 피하기 위해 미국 회계사 대신 감사에 참여하지 않은 한국 회계사 명의를 보고서에 올린다는 말이다. 회계감사 조서란 회계감사 중에 파악한 모든 사항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서류로 조서에는 회계사의 서명이 꼭 있어야 한다. 추후 부실감사 여부를 판단할 때 근거로 삼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4대 회계법인의 AICPA 자격증 소지자는 1000명에 달한다. 삼일이 472명, 안진 214명, 삼정 181명, 한영 97명 등의 순이다. 국내 KICPA 자격증 보유자를 빼면 회계법인마다 100여명의 미국 회계사 자격증 소지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젊은 국내 회계사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공인회계사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감사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감사의 질 저하와 책임 전가 문제가 발생한다”며 “단순히 밥그릇 싸움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과 경제의 신뢰성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에서 외국 회계사 등록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회계사회 관계자는 “해당 민원을 제보받고 현재 실무팀에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