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장주의자를 선택한 아르헨티나
지난 22일(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캄비에모스(바꾸자)당의 후보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이 여당인 페론당 후보에게 승리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의 선심성 정책에 맛을 들인 아르헨티나 유권자들로 하여금 시장주의자인 마크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철저한 경제 파탄이었다.

지난 12년간 계속된 페론당 출신 부부 대통령의 반(反)시장적 경제정책 결과 성장률은 둔화됐다. 지난해부터는 숫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복지 확대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만 치중했다. 정부 예산의 20%를 생활보조금으로 지출했다. 재정이 바닥난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통화 발행으로 재정적자를 메우다 보니 인플레이션이 따라왔다. 물가상승률은 2010년 이후 매년 20%를 넘어 2014년엔 38.5%에 달했다. 중국의 성장률 저하로 대(對)중국 수출이 줄어들면서 외환보유액도 바닥났다. 외채를 갚지 못해 2002년에 이어 또다시 국가부도 상태다.

아르헨티나가 어떤 나라인가. 온화한 기후, 기름진 땅, 풍부한 자원. 그야말로 천혜의 땅이다. 당연히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였다. 1930년대에 문자 해독률 90%를 넘어섰던 나라다. 남미판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엄마 찾아 3만리’라는 만화영화는 돈 벌러 아르헨티나에 간 엄마를 찾아 나선 이탈리아 소년이 겪게 되는 여러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그만큼 아르헨티나는 가난한 유럽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그랬던 아르헨티나가 이토록 몰락하다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당연한 의문이다. 그래서 일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아르헨티나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아르헨티나 사람도 만들었다.” 천혜의 조건 하에서 나라를 이토록 엉망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르헨티나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다.

하지만 답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문제의 근원은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적 정치와 그에 따른 선심성 정책이다. 지금까지 아르헨티나를 괴롭혀 온 중요한 경제적 문제들은 후안 페론의 포퓰리즘 시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군정기간과 1990년대 잠시 페로니즘의 제도적 유산은 일부 불식됐지만 지금도 포퓰리즘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의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 운영에서 포퓰리즘은 성장과 소득 재분배의 동시 달성을 강조하는 반면 인플레이션과 적자재정의 위험, 외부적 제약, 비(非)시장적 정책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무시한다.

우리가 아르헨티나 실패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포퓰리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통경제학에서도 마르크스경제학에서도 성장과 분배는 맞바꾸기(trade-off)가 불가피한 것으로 돼 있지만, 민중주의자들은 사악한 자본의 착취만 배제하면 사회의 여러 부문을 모두 보듬고 잉여를 광범하게 분배하는 동시에 성장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분배 위주 정책과 제도를 채택하고 나면 이를 되돌리거나 해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르헨티나의 경험은 말해 준다. 기존의 시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점점 더 많은 시혜가 요구된다. 어떤 경제 실적도 이런 요구를 장기적으로 충족시킬 길은 없다. 결국에는 재정이 파탄을 맞게 된다. 적자재정으로 이를 충당하면 다른 투자가 밀려나고 통화를 발행해 이를 메울 경우 인플레이션이 뒤따른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투자는 감소한다. 그 결과 성장은 더욱 후퇴하고 실적과 요구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져 소요와 사회적 불안이 커진다. 아르헨티나에서 보듯이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정치적 위기가 거듭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정치경제학 교수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