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엊그제 미국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 세미나’에서 “흡수통일은 한국과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북한에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군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극단적 폭력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통준위의 민간 대표가 이런 발언을 했다니 귀를 의심할 정도다.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을 의식해 흡수통일을 공개적으로 내걸 수 없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흡수통일을 반대하며 김정은 정권을 동반자로 한 ‘평화통일’을 말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UN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책임자’들을 효과적으로 제재할 것을 안전보장이사회에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지가 한 달이 안 됐다. 김정은 정권이 국제적으로 기소될 것인지가 문제되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헌법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통일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제4조)임을 명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밝힌 통일도 북한의 개방·개혁을 전제로 한 자유민주 통일이다. 통일을 준비한다는 한국 통준위 부위원장이 미국에 가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정 부위원장은 지난 3월 한 세미나에서도 흡수통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요지로 말했다가 일부 언론의 지적을 받자 “통준위에는 흡수통일 준비팀이 없고, 연구도 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설마 연방제 통일도 수용한다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흡수통일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통일 비전을 갖고 있지 않은 인사가 통준위를 이끌 수는 없다. 제대로 된 해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