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가 어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실천 선언문을 발표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과 관련한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부가 무슨 대책만 내놓으면 재계가 선언문으로 화답하는 게 아예 굳어져 가는 모양새다. 부총리를 비롯해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 측 인사말로 시작해, 경제단체장의 실천 선언문 발표, 그리고 정부의 감사말로 끝나는 진행 순서도 판박이다.

경제단체를 모아 이런 선언식을 하도록 하는 이유를 우리는 모르겠다. 국민 누구도 경제인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행사를 연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실천 선언식은 그 형식만큼이나 내용도 구(舊)시대적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경제단체가 결혼과 출산을 위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근로시간을 개선하며, 정부의 출산·육아 지원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직장 어린이집을 확대하며, 남성도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민관합동 협의에 적극 참가하겠다는 것 등이다.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이렇게 모조리 기업 몫으로 할당되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은 죄다 기업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복지, 일자리, 기후변화,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이제는 저출산 대책까지 포함됐다. 정부가 지난 1, 2차 저출산 대책 계획기간 중 무려 15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초저출산(1.3명 이하) 탈피’에 실패한 데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3차 저출산 대책의 초점을 ‘보육 지원’에서 ‘결혼 장려’로 바꾸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생각해 낸 건 5년간 37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등이다. 결국 기업에 결혼과 출산을 위해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는 것이다. 참 재미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니, 참 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명령만 하면 이 모든 것을 기업들은 뚝딱 만들어 낸다는 것인가. 기업하기가 정말 힘들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환경 속에서 당장의 생존도 버겁다는 기업들의 허리만 더 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