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래 먹거리 바이오 투자에 적극적이어야
가을이 되면 거둬들일 것이 있어야 겨울을 편하게 날 수 있다. 그런 기쁨은 봄에 부지런히 씨를 뿌린 자만의 특권일 것이다. 그러나 내년의 한국 경제는 ‘시계 제로(0)’ 상태이고,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모두들 불안한 마음으로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서울신용보증재단 회의실에서 5년 전에 서울시가 결성한 바이오펀드 운용 현황과 결과를 보고받고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는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5년 전, 서울시가 마곡지구 개발을 추진하려고 할 때 필자는 서울시 투자실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서울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상암디지털단지 조성 경험을 발판으로 서울시의 관문이기도 한 마곡지구에 친환경산업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바이오헬스단지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단지에 벤처기업을 많이 유치하려면 그들 벤처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바이오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750억원 규모의 1차 바이오펀드가 조성되고 미국 벤처캐피털과 협업관계를 맺은 펀드 운용 주관사는 서울에 있는 초기 바이오벤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울시 의회가 “왜 위험한 바이오 분야에 투자하느냐”고 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운용 주관사는 놀라운 투자 수익 현황을 보고했다.

열악한 투자 환경에서도 서울시 바이오펀드로부터 투자받은 초기 벤처회사들은 살아남았다. 몇몇 벤처는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 서울시 바이오펀드에 수백%의 수익을 안겼다. 동시에 청년들을 위한 고급 일자리도 제공하는 효과까지 보여줬다. 만일 5년 전에 투자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펀드를 조성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백억원의 돈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 사라졌을 것이다.

위기는 현재의 성공을 안겨준 모멘텀과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새로운 돌파구가 형성되는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은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드물었지만 지금은 상시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이런 위기가 닥치면 시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무대에서 끌려 내려오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갖춘 주인공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전환기에 미래 먹거리와 성장을 위해 불확실하지만 꼭 필요한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공공펀드가 있다면 새로운 산업 생태계 형성과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역민들을 위해 일자리를 늘리고,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조성할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이에 앞장선다면 그 의미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후손을 위해 조금 더 희생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한국의 놀라운 성장을 빼고 20세기 역사를 논할 수 없다”며 한국의 투철한 기업가 정신을 높이 샀다.

이제 우리는 후손에게 빚만 잔뜩 물려주는 못난 세대가 되기보다는 적극적인 투자로 자랑스러운 한국을 물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을 위한 투자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일찍이 스피노자가 외쳤던 것처럼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도 오늘 우리는 꿋꿋하게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호 < 분당차병원 암센터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