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 한국 신용등급] "빚 갚을 능력 좋다는 것일뿐…경제체력 평가는 아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지난 19일 한국에 부여한 국가신용등급 Aa2는 프랑스 등 초우량 국가에만 가능했던 등급이다. 경제가 ‘비상사태’라는 정부와 시장의 일반적 인식과는 괴리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한국 경제의 실제 체력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빚(대외채무) 갚을 능력’을 우선 보는 신용평가사의 특성상 가계부채 급증, 기업실적 악화와 같은 숨은 국내 악재를 진단하지 못했을 것이란 점에서다. 이미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직후 이들의 ‘뒷북 하향’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용위험지표 좋다지만…

무디스가 한국의 등급 상향 요인으로 제시한 것은 ‘견조한 신용위험지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부채가 30% 수준으로 양호하고, GDP 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20%대로 낮은 점 등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신평사는 한 국가나 기업이 외화표시로 발행한 채권을 얼마나 잘 갚을 수 있는지를 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무디스가 긍정평가 요인으로 평가한 국가부채도 GDP 대비 30%대 후반으로 90%를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양호하다.

전문가들은 겉으로 드러난 신용지표만으로는 실물경제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무디스는 한국의 통합재정수지(중앙정부의 총수입-총지출)가 지난 5년간 GDP 대비 평균 1.1% 흑자를 나타내 Aa3 등급 이상인 국가(원유생산국 제외)의 중간값(1.3% 적자)을 크게 웃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합재정수지엔 국민연금기금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이 포함돼있어 정확한 재정 상황을 판단하긴 적절하지 않다. 급격한 고령화 탓에 기금재정이 급속히 악화돼 통합재정수지는 이미 올해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해가 갈수록 적자폭이 커질 것이란 게 정부 추산이다.

◆숨어있는 잠재 위험요인은 간과

시장이 느끼는 경제 상황과 무디스의 상향 평가 간 괴리에는 또 다른 요인도 있다. 우선 빠른 고령화, 복지지출 증가뿐 아니라 미래 통일비용 발생에 따른 잠재 재정악화 요인은 평가 기준에서 제외됐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장기재정 전망에서 이런 요인을 반영해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지난해 35.9%에서 2060년 62.4%까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새 복지제도를 도입하거나 구조개혁이 실패할 경우 OECD 평균 수준인 90%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물경제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도 무디스 평가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12년 두 자릿수가 무너진 이후 작년에는 1.3%까지 떨어졌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은 매출 및 수익성 하락 속도가 더 가파르다.

◆1997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빚 갚는 능력’만으로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진단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신용등급을 실제 경제 체력으로 ‘착각’했다가 큰코다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3월 무디스는 한국에 A1 ‘안정적’ 평가를 부여했다가 구제금융 신청 직전까지도 하향 조정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높은 신용등급에 자축하다 위기에 대비할 기회를 오히려 잃어버린 것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신용평가기관에 물어보니 ‘신용등급은 과거 통계치를 보는 것이지 1년 뒤를 예측할 수 없다’고 변명하더라”며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못해 수출 감소 등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상황과 1997년 직전이 겹친다”고 우려했다. 신용등급 상향에 취한 채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을 미뤄선 안 된다는 충고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