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품은 그저 그림일 뿐 상징이나 의미 찾지 마세요"
“제 그림에는 어떤 이론이나 이념도 없으니까 그냥 편안하게 즐기면 됩니다. 사람들이 자꾸 그림에서 의미 또는 상징을 캐내려 하는데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입니다.”

다음달 24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세필화가 김홍주 씨(70·사진)는 “그림은 의미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각적 유희”라며 이같이 말했다.

1970년대 개념미술을 내세웠던 전위예술단체 ST(Space and Time)그룹에서 활동한 김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방향을 틀어 회화의 본질에 관심을 보여왔다. ‘그리기’라는 테크닉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세련된 감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미술대상전에서 최우수 프런티어상(1978년), 프랑스 칸국제회화제에서 특별상(1980년)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화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달항아리와 꽃, 풍경 등 다양한 이미지를 세필의 반복적인 터치로 완성한 단색화 경향 작품 13점을 걸었다. 원로 단색화가인 박서보 하종현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 김씨는 특정한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틀에 박힌 양식이나 관념적 유희에 빠지지 않는 일관된 회화 정신을 보여준다.

작가는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림에서 달항아리나 풍경, 꽃잎 같은 소재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어떤 미학적 의미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다시 보기를 제안한다.

모든 대상을 평범한 시각으로 관찰하지 않는다는 그의 생각은 그림을 전시장 벽에 걸 때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컨대 가로로 놓고 그렸지만, 전시장에는 세로로 걸어놨다. 어떤 작품은 위아래를 뒤집어 걸었지만,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또한 작가는 세필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물리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회화에 개입시킨다. 세필의 반복적인 터치로 완성되는 그의 작업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의 시간과 행위를 캔버스에 담으면서 회화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기보다는 회화 자체, 그리기 본연의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그린 작품은 멀리서 보면 윤곽이 항아리처럼 보인다. 작가는 “얘기하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바늘처럼 가는 붓으로 산등성이 하나하나 긁어내듯 금강산을 그려나갔다”며 “나의 사고가 그림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림들이 내 사고를 결정해 간다”고 설명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