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석 서울대 음대 교수 "음악에 1등은 없어…국악 저변확대에 기여 보람"
“형편이 어려워 시작한 국악이었는데 거문고를 만나 평생의 업으로 삼다 보니 서울대 교수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최고의 ‘거문고 명인(名人)’으로 평가받는 정대석 서울대 국악과 교수(65·사진)는 28일 정년퇴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사람들은 나를 거문고의 1인자로 부르지만 음악의 세계에는 1등이란 없다”며 이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정 교수는 9년간의 서울대 교수 생활을 마치고 내년 2월 정년퇴임한다.

그는 2007년 비(非) 음악대학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됐다. “당시 서울대에서 거문고 전공자를 뽑는다고 해서 용기를 내 처음 교수직에 지원했다”며 “그 전까지는 교수가 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국악계를 대표하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재중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선택한 곳이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양성소(현 국악중학교)였다. “국악이 뭔지도 모른 채 단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들어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국악양성소 3학년 때 접한 거문고는 정 교수의 일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거문고 연주를 처음 듣고 죽는 날까지 함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수강료를 구하지 못해 물동이를 나르고 쇠를 주워다 팔며 거문고 공부를 계속한 그는 국악강사로 활동하다가 1970년 단국대 국문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형편상 도저히 비싼 음대 학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교수는 꿈을 잃지 않고 국악 동아리 활동을 하며 거문고를 계속 연주했다. 그가 빛을 보기 시작한 건 1975년 국악 콩쿠르에 나가 대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등에서 단장 등을 맡으며 뛰어난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다.

정 교수는 지난 9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시대에 다소 뒤떨어졌던 거문고의 체계를 바로잡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주력했다. 퇴임 이후에도 초빙교수로 서울대에서 계속 강의할 예정이다.

국악과 거문고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슬로베니아와 터키 등지에서 협연했고 내년엔 태국과 이탈리아에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정 교수는 “그리 길지 않은 교직 생활이었지만 나에겐 행운이었고 국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보람도 크다”며 “‘고구려의 여운’ 등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담은 곡들을 연주해 국악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데 남은 일생을 바칠 것”이라고 밝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