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째 흔들리는 노동개혁] 기간제법 포기 이어 파견법까지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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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법안 개정 움직임
대기업 하도급·협력사는 파견 허용 제외 움직임
한노총 "대타협 파기…'정부지침' 위헌소송 낼 것"
대기업 하도급·협력사는 파견 허용 제외 움직임
한노총 "대타협 파기…'정부지침' 위헌소송 낼 것"
정부의 노동개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지난 13일 5대 노동개혁법안 중 기간제법 처리를 포기한 데 이어 중·장년 고용효과가 큰 파견법마저 대폭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해 파견 허용 대상에서 대기업 사내하도급과 협력업체는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개혁의 근본 취지인 고용 유연성은 확보하지 못한 채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기업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노동계는 파견법 개정안이 제조부문 대기업의 파견근로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당정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대기업 사내하도급과 협력업체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회에서 이 같은 방향으로 개정안을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법 개정안은 금형, 주조,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뿌리산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55세 이상 고령자와 근로소득 상위 25%(2015년 기준 연 5600만원)의 고소득 전문직에도 파견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생명·안전과 직결된 핵심 업무에는 파견을 제한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현행 파견법은 컴퓨터 관련 업무, 통역사, 주유원 등 32개 업종에만 제한적으로 파견을 허용하고 정작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은 금지하고 있다. 기간제법 실종, 파견법은 후퇴…"고용 유연성 빠진 개혁 왜 하나"
정부는 파견법 개정으로 약 1만78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2만8000여명의 인력이 부족한 뿌리산업 중소기업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만7800여명은 전체 근로자의 0.1%, 파견 근로자의 9.3% 정도가 늘어나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인력난 해소와 고용 유연성 확보를 위해 규제 완화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독일, 일본,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파견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정규직 채용을 늘리겠다며 파견 규제를 하다보니 오히려 기업들이 기간제 근로자를 많이 뽑고 사내하도급과 외주 생산이 늘어나는 등 이른바 ‘풍선 효과’도 나타났다.
하지만 노동계는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하면 자동차 및 조선분야의 대기업이 직접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하도급업체를 통해 직접생산 공정에도 파견근로자를 쓰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3일 대통령 담화 직후 “파견 확대는 직접고용을 간접고용으로 전환하는 회전문 효과만 발생시킨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파견법 수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파견법은 이미 상당히 양보한 법안”이라며 “더 이상 양보는 있을 수 없고, 무조건 원안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뿌리산업 파견 허용은 중소·중견기업에 한정돼 있는 것으로 대기업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노·사·정 합의 파탄’ 선언을 예고하자 핵심 법안인 기간제법 처리를 포기한 정부가 입법에 급급해 파견법도 일부 수정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기간제법 ‘포기’에 이어 파견법마저 수정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단시안적인 시각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파견근로 확대가 비단 고용창출 효과만이 아니라 제조업 전반에 걸친 산업구조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무관한 영세 중소기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한다는 것은 제조업 현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른다는 얘기”라며 “한두 사람을 더 고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과 공동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양성되는 숙련기술 인력 등 노동시장 전체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대기업 협력사라고 해서 해당 기업의 고용형태에 국가가 개입한다면 또 다른 시장규제를 생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파견법 수정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파견법은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악화시키는 악법 중 악법”이라며 전면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9·15 노·사·정 합의가 정부와 여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혀 휴지 조각이 됐고, 완전 파기돼 무효가 됐다”며 “한국노총은 더 이상 합의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의 파기와 노사정위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오늘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협상기조에서 벗어나 정부·여당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맞선 전면적인 투쟁 체제로 전환한다”며 “정부 지침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 소송과 함께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反)노동자 후보와 정당에 대한 낙선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파견법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동시장 유연화 차원에서 행정·서비스 등 32개 업종에 대한 파견이 허용됐다. 하지만 제조업에는 파견이 금지돼 있어 하도급·외주생산 등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개정안은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뿌리산업
주조, 금형,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소성가공(塑性加工) 등 6개 기술분야 기초 공정산업을 말한다. 나무의 뿌리처럼 제조업의 근간을 형성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뿌리산업 업체 수는 2만6000여곳. 종사자는 42만여명으로 전체 제조업의 11.7%를 차지한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노동계는 파견법 개정안이 제조부문 대기업의 파견근로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당정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대기업 사내하도급과 협력업체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회에서 이 같은 방향으로 개정안을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법 개정안은 금형, 주조,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뿌리산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55세 이상 고령자와 근로소득 상위 25%(2015년 기준 연 5600만원)의 고소득 전문직에도 파견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생명·안전과 직결된 핵심 업무에는 파견을 제한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현행 파견법은 컴퓨터 관련 업무, 통역사, 주유원 등 32개 업종에만 제한적으로 파견을 허용하고 정작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은 금지하고 있다. 기간제법 실종, 파견법은 후퇴…"고용 유연성 빠진 개혁 왜 하나"
정부는 파견법 개정으로 약 1만78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2만8000여명의 인력이 부족한 뿌리산업 중소기업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만7800여명은 전체 근로자의 0.1%, 파견 근로자의 9.3% 정도가 늘어나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인력난 해소와 고용 유연성 확보를 위해 규제 완화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독일, 일본,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파견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정규직 채용을 늘리겠다며 파견 규제를 하다보니 오히려 기업들이 기간제 근로자를 많이 뽑고 사내하도급과 외주 생산이 늘어나는 등 이른바 ‘풍선 효과’도 나타났다.
하지만 노동계는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하면 자동차 및 조선분야의 대기업이 직접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하도급업체를 통해 직접생산 공정에도 파견근로자를 쓰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3일 대통령 담화 직후 “파견 확대는 직접고용을 간접고용으로 전환하는 회전문 효과만 발생시킨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파견법 수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파견법은 이미 상당히 양보한 법안”이라며 “더 이상 양보는 있을 수 없고, 무조건 원안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뿌리산업 파견 허용은 중소·중견기업에 한정돼 있는 것으로 대기업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노·사·정 합의 파탄’ 선언을 예고하자 핵심 법안인 기간제법 처리를 포기한 정부가 입법에 급급해 파견법도 일부 수정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기간제법 ‘포기’에 이어 파견법마저 수정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단시안적인 시각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파견근로 확대가 비단 고용창출 효과만이 아니라 제조업 전반에 걸친 산업구조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무관한 영세 중소기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한다는 것은 제조업 현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른다는 얘기”라며 “한두 사람을 더 고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과 공동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양성되는 숙련기술 인력 등 노동시장 전체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대기업 협력사라고 해서 해당 기업의 고용형태에 국가가 개입한다면 또 다른 시장규제를 생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파견법 수정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파견법은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악화시키는 악법 중 악법”이라며 전면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9·15 노·사·정 합의가 정부와 여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혀 휴지 조각이 됐고, 완전 파기돼 무효가 됐다”며 “한국노총은 더 이상 합의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의 파기와 노사정위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오늘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협상기조에서 벗어나 정부·여당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맞선 전면적인 투쟁 체제로 전환한다”며 “정부 지침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 소송과 함께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反)노동자 후보와 정당에 대한 낙선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파견법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동시장 유연화 차원에서 행정·서비스 등 32개 업종에 대한 파견이 허용됐다. 하지만 제조업에는 파견이 금지돼 있어 하도급·외주생산 등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개정안은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뿌리산업
주조, 금형,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소성가공(塑性加工) 등 6개 기술분야 기초 공정산업을 말한다. 나무의 뿌리처럼 제조업의 근간을 형성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뿌리산업 업체 수는 2만6000여곳. 종사자는 42만여명으로 전체 제조업의 11.7%를 차지한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