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한철 씨가 ‘밀감’을 노래하고 있다.
가수 이한철 씨가 ‘밀감’을 노래하고 있다.
“난생처음으로 색소폰이 없는 무대에 나왔습니다.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온 기분이에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무대에 재즈 음악가 신현필 씨가 자신의 색소폰 대신 징을 들고 나섰다. 그는 국악 곡의 기본 구조인 기경결해(起景結解)를 소재로 작곡한 ‘망각된 미래’를 연주했다. 곡의 절정에서는 엇모리장단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이날 공연은 국립국악원이 대중음악과 국악의 만남을 주선한 자리였다. 가수 이한철, 영화음악 작곡가 김용, KBS 드라마 음악감독을 지낸 이범준 등 대중음악가 14명이 작곡한 10곡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연주로 초연했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16주간 국악 악기와 작곡 기법 등을 배워 만든 결과물이다.

공연에 참여한 대중음악가들은 각자의 특기를 국악과 혼합해 선보였다. 재즈 피아니스트 이지연 씨는 창작 국악곡 ‘매화’에서 새타령과 매화타령 가락을 재즈 화성으로 풀어냈다. 농현(줄을 짚고 흔드는 연주법)으로 낸 해금의 떨림음이 베이스의 재즈식 선율과 어우러졌다.

팝페라 작곡가 김효근 씨는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시에서 이름을 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한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를 표현했다. 뉴에이지풍 피아노 화성에 대금 해금 가야금 연주를 더해 독특한 분위기를 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국악의 매력에 매료됐다”고 입을 모았다. 서양 음악과 구별되는 국악만의 독특한 특징에도 주목했다.

‘피리, 대금, 거문고와 피아노를 위한 길’을 공연한 합창 작곡가 조혜영 씨는 “서양음악은 눈금을 잰 것처럼 음이 정확히 떨어지는 반면 국악은 은근하고 섬세한 음 표현이 특징”이라며 “국악을 현대 합창음악으로 승화한 곡을 쓰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국악을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숙 국립국악원 원장은 “대중음악가를 대상으로 연 첫 국악 강좌에 100명이 넘는 수강신청생이 몰려 국악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다”며 “연극이나 뮤지컬 분야 작곡가 등으로 강좌 대상과 내용 폭을 넓혀 국악과 현대문화의 간극을 좁힐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