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무자격 의원후보 걸러내기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여야 정당들은 아직도 진영 내부의 분열과 갈등 때문에 공천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파 간 대립과 반목, 그리고 탈락자의 반발만이 언론의 주목을 끌 뿐 정작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예비후보의 자질이나 인물됨, 정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실종됐다. 이 상태라면 유권자는 후보등록이 이뤄지는 이달 말께나 겨우 누가 각 정당의 후보인지 알게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유권자는 후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필을 굴려 택일형 문제의 답을 찍듯이 되는 대로 표를 던질 것이다. 지연, 학연, 혈연에 따라 투표하는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라지만 선거가 거의 유일한 주권 행사 방법임을 감안하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면 정치인으로 하여금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할 수도 없고 비(非)생산적인 국회를 막을 길도 없다.

정치의 비생산성을 가지고 경쟁을 벌이면 한국이 상위권에 들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별 이론이 없을 것이다. 특히 정치의 한가운데 있는 국회가 심각한 불임 상태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제도와 이에 담긴 유인구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국회는 거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시사하는 것이 국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지금은 사전에 등록한 차량만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지 정해진 주차공간만으로는 등록 차량도 다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국회 경내에는 여전히 길가에 주차한 차가 많다. 반면 국회의원은 선거 때 외에는 거의 책임질 곳도, 책임질 때도 없는 기관이다. 제도적으로 국회를 감시하고 견제할 곳이 없는 한 국회의원이 권한을 오·남용하는 걸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공천이 실적과 별 관계없이 이뤄지는 한 특별히 열심히 일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문제라고 해서 사람이 중요치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잘못된 유인을 제공하는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나은 사람이 필요하다. 도덕성과 공익정신 면에서 일반 국민보다 낫지 않은 사람은 공천 과정에서, 그리고 선거에서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다음의 최소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배제해야 할 것이다. 첫째, 파렴치 범죄 전력자와 막말이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자다. 보통 사람보다도 못한 행동을 하는 이런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둘째, ‘갑질’이나 비리 전력이 있는 자다.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권한을 남용할 개연성이 그만큼 더 크다. 셋째,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는 자다. 넷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언행을 하는 자다. 대한민국 헌법기관의 하나인 국회의원이 헌법적 가치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네 가지는 최소한의 잣대일 뿐 결코 충분하지는 않다. 정치판의 역설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 가운데는 이상적인 정치에 적합한 사람이 적고 적합한 사람 가운데는 나서는 사람이 적다는 점이다. 한국과 같이 정치적 냉소주의가 강한 곳에서는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잘할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괴리가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각 정당은 얼마 남지 않은 최종 공천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에라도 초야에 은거하는 어진 이를 찾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도 할 일이 있다. 정당들이 내홍에 휩싸여 후보를 거르는 기능이나 추천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유권자가 스스로 걸러내야 한다. 반드시 선거에 참여해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기준을 적용해 걸러내고 남은 사람 가운데서 그나마 나아 보이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정치가 기적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더 나빠지는 일은 최소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