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AI 신드롬 속 직업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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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도 AI로 거뜬, 빅데이터로 스토리 창작…셰프도 공학 배워야 살아남는 시대 오겠죠"
대기업 직장인 20년 뒤는…
데이터 분석, AI 못따라가…대리~과장 허리층 얇아질 듯
인간의 영역도 있다
문서 번역은 기계가 하겠지만 동시통역은 대체하기 힘들 것
대기업 직장인 20년 뒤는…
데이터 분석, AI 못따라가…대리~과장 허리층 얇아질 듯
인간의 영역도 있다
문서 번역은 기계가 하겠지만 동시통역은 대체하기 힘들 것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2국이 펼쳐진 지난 10일. 알파고의 불계승으로 대국이 끝나자 서울 여의도 한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하는 김모 팀장(38)은 동료들과 예정에 없던 술자리를 마련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미 인공지능(AI)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펀드매니저란 직업이 10년, 20년 뒤에도 존재할 수 있을지 직원들과 한참을 얘기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면서 바둑의 낭만, 인류의 미래 등에 대해 얘기한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하는 주제는 ‘직업의 미래’다. “현재 인기 있는 상당수 직업을 앞으로 AI가 맡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인 20~30대 직장인에게 AI는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내 아이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까’라는 문제가 교육의 화두가 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김과장&이대리’팀은 20~30대 직장인에게 AI가 대세가 된 세계에서 자신이 속한 직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허리층이 얇아진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소속 이모 대리(33)는 “알파고의 활약을 보면서 ‘내가 21세기판 러다이트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러다이트란 19세기 초 기계의 등장으로 직장을 잃게 돼 기계 파괴에 나선 노동자들을 말한다.
이 대리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를 고안하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이 대리가 맡은 업무의 핵심은 트렌드 변화를 남들보다 먼저 알아채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업무는 데이터 분석 등에 강점을 보이는 AI가 언제든 대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리는 “대기업에서 30대인 대리부터 과장까지 허리층의 업무 난이도는 분야를 불문하고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AI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회사의 경영방침을 결정하는 높은 직급만 살아남고, 중간 관리직은 감소하지 않을까요.”
경제·경영 서적을 주로 읽던 이 대리는 최근 인문학과 디자인 관련 책 여러 권을 구입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어요.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고, 자극하는 일만큼은 AI가 침범할 수 없을 테니까요.” 충격에 빠진 금융업계
금융권 자산관리(WM) 분야 종사자나 펀드매니저는 이 9단과 알파고 간 대국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한 시중은행 강남 도곡동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 근무하는 박모 팀장(39)은 “은행원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AI가 은행원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며 “은행원 수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박 팀장은 은행 내 여러 직군 중에서 자신이 속한 WM 분야를 가장 먼저 사라질 분야로 꼽았다. “AI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의 변동성을 파악하고, 투자자에게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최근 하락장에서 펀드매니저보다 나은 성과를 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간 프라이빗 뱅커보다 AI가 더 나은 성과를 낸다면 고객으로선 인간을 찾을 이유가 없지요.”
다만 로보어드바이저에 정통한 관계자 중에 “금융분야에서 인간과 AI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작년 말 국민은행과 손잡고 로보어드바이저가 운영하는 자문형 신탁상품을 내놓은 양신형 쿼터백투자자문 대표(34)는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의 원칙적 자산운용과 인간의 투자 판단이 접목하면 더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업계에 ‘셰크니션’ 전성시대 열릴 것”
식품업계의 주니어 직장인들은 “시장에서 획일화한 제품이 사라지고, 고객 맞춤형 제품 생산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재훈 CJ제일제당 신유통본부팀 사원(25)은 “10~20년 뒤에는 연령, 성별, 체질에 따른 필수영양소와 각 개인의 기호까지 고려해 최적의 식단을 제안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기 셰프들도 기계를 다루는 공학적 지식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셰프와 테크니션의 합성어인 ‘셰크니션’이 각광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다만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메뉴 선정, 조리, 상차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의 감각이 필요한 부분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창작, 기사 작성도 AI가
칼 프레이, 마이클 오스본 옥스퍼드대 교수는 2013년 발표한 ‘직업의 미래’란 보고서에서 앞으로 20년 내 없어질 대표적 직업 중 하나로 작가를 꼽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작가가 사라질 확률은 88%에 달한다.
이 같은 전망에 국내 문학계 종사자들도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문학작품 전문 출판사의 김모 편집장(37)은 “AI가 대부분을 창작하는 문학작품이 나올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시, 소설 등 많은 수의 작품을 데이터로 입력한 뒤 패턴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개연성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인물의 성별, 나이, 성격 등을 설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플롯을 짜고, 여기서 AI가 가장 자연스럽고 빼어나다고 판단한 작품을 쓰는 방식으로 창작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쓰기를 주업으로 하는 기자 직업의 미래는 김과장&이대리 팀원에게도 화제였다. AI가 확산되면 기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기자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지금도 단순 보도는 AI가 대신하는 실험이 지속되고 있어 기자도 인력이 감소하는 직종이 될 것”이라는 의견과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해석은 AI가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맞섰다. “단순 전달형 기사작성 업무에서 해방돼 심층 취재에 몰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인간의 몫도 있다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손모씨(39)는 10년 넘는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다. 최근 구글 번역 등 번역 솔루션들이 나오면서 주변에서 “앞으로 통·번역사도 직업을 잃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손씨는 크게 괘념치 않는다. 손씨는 “문서 번역이라면 몰라도 동시통역만큼은 기계가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하기 어렵다”며 “베테랑 통역사는 말하는 사람의 정서와 감정, 상황에 따른 뉘앙스까지 고려하는데 기계가 이런 부분까지 잡아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사람의 감정까지 이해하는 AI가 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20년 이상은 걸리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의견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미 인공지능(AI)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펀드매니저란 직업이 10년, 20년 뒤에도 존재할 수 있을지 직원들과 한참을 얘기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면서 바둑의 낭만, 인류의 미래 등에 대해 얘기한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하는 주제는 ‘직업의 미래’다. “현재 인기 있는 상당수 직업을 앞으로 AI가 맡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인 20~30대 직장인에게 AI는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내 아이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까’라는 문제가 교육의 화두가 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김과장&이대리’팀은 20~30대 직장인에게 AI가 대세가 된 세계에서 자신이 속한 직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허리층이 얇아진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소속 이모 대리(33)는 “알파고의 활약을 보면서 ‘내가 21세기판 러다이트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러다이트란 19세기 초 기계의 등장으로 직장을 잃게 돼 기계 파괴에 나선 노동자들을 말한다.
이 대리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를 고안하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이 대리가 맡은 업무의 핵심은 트렌드 변화를 남들보다 먼저 알아채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업무는 데이터 분석 등에 강점을 보이는 AI가 언제든 대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리는 “대기업에서 30대인 대리부터 과장까지 허리층의 업무 난이도는 분야를 불문하고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AI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회사의 경영방침을 결정하는 높은 직급만 살아남고, 중간 관리직은 감소하지 않을까요.”
경제·경영 서적을 주로 읽던 이 대리는 최근 인문학과 디자인 관련 책 여러 권을 구입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어요.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고, 자극하는 일만큼은 AI가 침범할 수 없을 테니까요.” 충격에 빠진 금융업계
금융권 자산관리(WM) 분야 종사자나 펀드매니저는 이 9단과 알파고 간 대국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한 시중은행 강남 도곡동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 근무하는 박모 팀장(39)은 “은행원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AI가 은행원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며 “은행원 수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박 팀장은 은행 내 여러 직군 중에서 자신이 속한 WM 분야를 가장 먼저 사라질 분야로 꼽았다. “AI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의 변동성을 파악하고, 투자자에게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최근 하락장에서 펀드매니저보다 나은 성과를 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간 프라이빗 뱅커보다 AI가 더 나은 성과를 낸다면 고객으로선 인간을 찾을 이유가 없지요.”
다만 로보어드바이저에 정통한 관계자 중에 “금융분야에서 인간과 AI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작년 말 국민은행과 손잡고 로보어드바이저가 운영하는 자문형 신탁상품을 내놓은 양신형 쿼터백투자자문 대표(34)는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의 원칙적 자산운용과 인간의 투자 판단이 접목하면 더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업계에 ‘셰크니션’ 전성시대 열릴 것”
식품업계의 주니어 직장인들은 “시장에서 획일화한 제품이 사라지고, 고객 맞춤형 제품 생산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재훈 CJ제일제당 신유통본부팀 사원(25)은 “10~20년 뒤에는 연령, 성별, 체질에 따른 필수영양소와 각 개인의 기호까지 고려해 최적의 식단을 제안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기 셰프들도 기계를 다루는 공학적 지식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셰프와 테크니션의 합성어인 ‘셰크니션’이 각광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다만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메뉴 선정, 조리, 상차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의 감각이 필요한 부분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창작, 기사 작성도 AI가
칼 프레이, 마이클 오스본 옥스퍼드대 교수는 2013년 발표한 ‘직업의 미래’란 보고서에서 앞으로 20년 내 없어질 대표적 직업 중 하나로 작가를 꼽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작가가 사라질 확률은 88%에 달한다.
이 같은 전망에 국내 문학계 종사자들도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문학작품 전문 출판사의 김모 편집장(37)은 “AI가 대부분을 창작하는 문학작품이 나올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시, 소설 등 많은 수의 작품을 데이터로 입력한 뒤 패턴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개연성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인물의 성별, 나이, 성격 등을 설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플롯을 짜고, 여기서 AI가 가장 자연스럽고 빼어나다고 판단한 작품을 쓰는 방식으로 창작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쓰기를 주업으로 하는 기자 직업의 미래는 김과장&이대리 팀원에게도 화제였다. AI가 확산되면 기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기자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지금도 단순 보도는 AI가 대신하는 실험이 지속되고 있어 기자도 인력이 감소하는 직종이 될 것”이라는 의견과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해석은 AI가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맞섰다. “단순 전달형 기사작성 업무에서 해방돼 심층 취재에 몰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인간의 몫도 있다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손모씨(39)는 10년 넘는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다. 최근 구글 번역 등 번역 솔루션들이 나오면서 주변에서 “앞으로 통·번역사도 직업을 잃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손씨는 크게 괘념치 않는다. 손씨는 “문서 번역이라면 몰라도 동시통역만큼은 기계가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하기 어렵다”며 “베테랑 통역사는 말하는 사람의 정서와 감정, 상황에 따른 뉘앙스까지 고려하는데 기계가 이런 부분까지 잡아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사람의 감정까지 이해하는 AI가 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20년 이상은 걸리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의견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