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영국 옥스퍼드도 '기업가형 대학'으로 변신했다
세계적 명문 영국 옥스퍼드대가 눈부시게 변신했다. 건학 9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순수 학문의 전당이 창업 메카로 환골탈태했다. 이 대학 캠퍼스에서는 두 달에 하나꼴로 새 기업이 탄생한다. 구글과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메이드 인 옥스퍼드’ 기업을 앞다퉈 인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970년 사이언스파크를 개설한 이래 산학협력의 대명사처럼 여겨온 케임브리지대를 누르고 영국 대학 중 최대 규모의 창업 자본 유치에 성공했다.

옥스퍼드대의 환골탈태는 두 가지 요인에 힘입은 바 크다. 첫째, 조밀한 창업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아이시스(Isis)라는 이름의, 창업 및 연구를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를 세웠다. 전문 인력이 포진해 ‘원스톱 창업 지원’을 제공했다. 동시에 다양한 창업 자금 조달처를 마련했다. 대학 예산으로 기업 창업에 없어서는 안 될 마중물인 시드펀드(seed fund)를 제공했다. 동문에게는 창업 지원 자금 기부를 독려했다. 엔젤 투자자 네트워크를 꾸리고 대학 구성원들이 세운 유망 신생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펀드를 출시했다.

둘째, 창업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문화를 확산시켰다. 경영대학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련 수업을 개설하고 국제 행사를 유치했다. 인도 타타사가 지원하는 창업경진대회는 4년째 계속하고 있다. 매년 개최하는 옥스퍼드 인스파이어스(Oxford Inspires)라는 스타트업 국제회의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아울러 창업 학생 모임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2002년 설립된 옥스퍼드 창업 동아리는 회원수가 1만명에 육박해 유럽에서 가장 큰 학생 창업 조직으로 성장했다.

옥스퍼드대의 혁신은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는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 대학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첫째, 창업지원 체계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2008년 기술지주회사가 설립되고 2009년에는 창업 경영 연구센터, 그리고 2012년에는 기업가센터가 문을 여는 등 유관 조직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아직 전문 지원 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창업 지원금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기술지주회사 자본금으로 충당되는 지원금을 제외하면 대학 차원에서 ‘한국의 마크 저커버그’를 꿈꾸는 학생이나 교수들에게 줄 지원 자금을 찾기 어렵다.

둘째, 창업 문화는 낯설기만 하다. 아직도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또는 “신성한 학내에서 돈벌이를 논하는 것은 이단”이라는 인식이 많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대 학생 창업 동아리인 SNUSV는 올해 창설 20주년을 맞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관련 과목 개설이 줄을 이었다. 창업 권장 프로그램인 ‘비 더 로켓(Be the Rocket)’을 비롯해 스타트업 경진대회의 숫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대학 부설 경력개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부생은 2%에 그친다. 창업클럽 회원수는 400명 선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변할 때다. 영미권에서 가장 오래되고 빼어난 대학 중 하나라는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대대적인 변신을 단행한 옥스퍼드대의 경험을 주목할 때다. 출생률 하락으로 인한 대학 진학생 감소와 교육과 기업 현장의 괴리로 생긴 대졸자 취업난이라는 양대 위기를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는 자기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고시 학원’이란 오명을 벗고 창업의 전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제2, 제3의 한국판 옥스퍼드대가 등장해서 무기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새 활력을 불어넣기를 고대한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kesopyun@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