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16] 모든 결정 총선 뒤로…4·13발 '정책 절벽'
4월13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행정부가 멈춰 섰다. 각 당이 후보 공천을 마무리하고 선거 국면에 들어서자 정부가 논란 소지가 있는 정책을 줄줄이 총선 뒤로 미루고 있다. 대부분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정책이다. 정책 추진이 중단돼 경제 회복에 차질을 빚는 ‘정책 절벽’ 우려까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면세점제도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서울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허용하는 문제는 발표에서 제외할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선거 과정에서 ‘대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면세점 허가 절차가 최소 3개월 걸린다는 점에서 일정이 늦춰질수록 사업의 불확실성만 커질 것으로 업계는 걱정하고 있다.

기재부는 이달 내놓으려던 청년·여성 일자리 창출 방안, 철도사업 구조 개편 및 요금체계 변경 등도 정치권 눈치를 보며 4월 말 이후로 발표를 연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 석유화학 등 공급과잉 업종에 대해 연초부터 자율 구조조정 방안을 짜왔다. 하지만 총선이 겹치면서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통과됐지만, 일러도 하반기에나 적용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구조조정 대상 업종이 대부분 PK(부산·경남) 지역에 있어 정치 논리가 개입된 것이란 말이 무성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적기를 놓치면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D-16] 모든 결정 총선 뒤로…4·13발 '정책 절벽'
20대 국회 출범까지 3개월 정책 공백 불가피

정부가 주요 정책 추진 시기를 총선 이후로 미룬 이유는 두 가지다. 선거에 영향을 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게 첫째 이유다. 국회의원이 상당수 바뀌기 때문에 선거 후 20대 국회가 출범한 뒤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 둘째 이유다. 20대 국회가 문을 여는 6월 말까지는 정책 공백이 불가피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1일 할 예정이던 여성·청년 일자리 대책 발표를 총선 뒤로 연기했다.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모든 청년(18~34세)에게 최소 월 40만원의 구직수당을 최대 6개월간 지급하고, 매달 최고 25만원의 면접 경비를 주는 내용의 고용노동부 방안이 미리 보도되자 부담을 느낀 게 주요 이유다. 고용부 안을 기재부가 받아들이고 발표하면 포퓰리즘 논란이 불가피하고 제외하면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 추진 계획을 총선 이후 발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지난해 6월11일 정부에 최종 권고안을 내놨지만, 산업부는 아직도 “세부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장갑 볼펜 등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 선정 절차에도 사회적·지역적 갈등이 컸는데, 핵연료였던 고준위 폐기물은 이보다 훨씬 심할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부과 체계 개편안을 1년 넘도록 “시뮬레이션 중”이라는 이유로 결정하지 않고 있다. 개편안에는 누군가는 건보료를 더 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간다.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재 소득 대비 건보료를 더 많이 내는 저소득층만 피해를 보고 있다.

입법을 수반하는 정책들은 아예 ‘개점 휴업’이다. 유치원(유아교육)과 어린이집(보육) 제도와 예산 등의 관리가 따로 이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보 통합’ 정책은 정부 출범 당시 국정과제로 선정돼 올해 끝내야 하지만 여전히 무소식이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과 유전자검사 때 규제를 없애는 ‘첨단재생의료 지원관리법 제정안’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법은 19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됐지만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입법이 막혀 있다는 이유로 행정부가 해야 할 정책 수단을 펴지 않는다는 것은 임무 방기”라고 지적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선이 끝나도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정감사를 받으려면 연말이 되고, 내년엔 대선이 있기 때문에 법안 처리가 더 힘들어진다”며 “국회 설득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만큼 선거를 이유로 정책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재후/김주완/고은이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