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당이 못하면 유권자가 나서야
오는 13일로 예정된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후보들의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유권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언론만 나서서 떠드는 게 선거판의 모습이긴 하나 이번 총선을 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은 유난히 싸늘하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주요 정당 모두가 공천을 둘러싸고 민망한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공익보다는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작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정당이 못한 것을 유권자가 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이 이렇게까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유권자도 그들의 그런 행동을 방조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들이 멋대로 행동하게 방치한 죄다.

세계가치관조사협회에서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정치에 대한 관심을 국제적으로 비교한 것을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 현저하게 다른 특징이 있다. 다른 나라는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과 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의 비율이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은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반면 정치에 대한 관심은 근래 현저하게 낮아졌다. 한마디로 정치는 중요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알려고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의 분석 방법을 정치현상 분석에 접목한 공공선택이론에서는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라고 부른다. 후보에 대해 알려면, 그리고 정당 공약의 차이를 알아내려면 상당한 비용, 즉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공들여 정보를 얻어서 투표를 한들 내게 돌아오는 편익이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내 한 표가 선거 결과를 결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합리적인 유권자는 투표를 하더라도 정보를 획득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학연, 지연, 혈연에 따른 투표를 하거나 그냥 정당의 이미지만 보고 투표한다. 개인의 정보비용을 줄이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역적 연고나 정당 이미지에 따라 투표한 결과 한국 주요 정당들의 지지 기반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놀랄 만큼 고착화됐다. 이렇게 이른바 ‘텃밭’이라는 게 있으니까 정당의 특정 세력이 공천을 가지고 횡포를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말뚝만 박아도 되니까 지역 여론이 어떻든, 인물이 어떻든 정파의 이해관계만 따져서 공천하려 든 게 이번 20대 총선의 공천이었다.

지금의 사태가 합리적 무지에서 비롯됐다면 유권자들은 지금보다 더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직자로 하여금 국민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공직자의 책임을 묻는 거의 유일한 제도적 수단이 선거다. 무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리고 선거 당일 투표장에 가서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물론 주어진 보기 가운데서 골라야 하지만 그래도 이번처럼 정당이 제구실을 못한 경우 유권자가 미처 걸러지지 않은 후보를 걸러내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을 택해야 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한 사람들을 보면 열 명 중 네 명은 범죄 경력이 있다. 19대 총선 후보자들과 비교했을 때 두 배나 높은 수치다. 세금을 안 냈거나 터무니없이 적게 낸 사람도 있고, 병역 사항이 수상쩍은 사람도 적지 않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동향 출신이라고, 같은 집안이라고, 특정 정당의 후보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하는 일이 이번에는 없어야 한다. 무지(無知)를 선택하는 게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내게는 합리적인 선택이 남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후보를 선출할 수 있도록 다 같이 나서자.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