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출신 화가 진 마이어슨이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스테이지 다이브’ 앞에 서 있다.
입양아 출신 화가 진 마이어슨이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스테이지 다이브’ 앞에 서 있다.
1972년 인천에서 태어난 진 마이어슨(한국명 박진호)은 네 살 때 미국 미네소타로 입양됐다. 어린 시절 반경 300㎞에 동양인이라곤 단 한 명도 없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려 유명해진 외삼촌(제임스 로젠퀴스트)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미니애폴리스미술대와 펜실베이니아 순수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난 공간과 격리돼 이국에서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했다. 불가피하게 타국에서 살아야 했던 코리안 디아스포라(離散)의 문화적 코드는 그림으로 태어났다. 최근 그의 그림은 영국 사치갤러리를 비롯해 미국 뉴욕 솔로몬구겐하임미술관, 첼시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소장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제 화단에서 한창 ‘몸값’을 올리고 있는 마이어슨이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뉴욕과 서울, 홍콩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잡지, TV, 사진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군중, 자연, 건물 등의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왜곡하고 해체해 새로운 이미지를 끌어낸다. 20세기 초 파블로 피카소 등 입체파 화가들이 형상을 해체한 데 비해 그는 대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왜곡함으로써 현대 회화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학고재에서 3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노 디렉션 홈(No derection home·돌아갈 집이 없다)’. 밥 딜런이 2005년 발표한 노래 ‘구르는 돌멩이처럼(Like a Rolling Stones)’의 가사에서 따왔다.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미국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온 작가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든 근작 11점을 걸었다.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데 염증을 느껴 한동안 붓을 잡지 않았다는 그는 “밥 딜런의 노래를 우연히 들으면서 나의 삶과 작품을 봤다”며 “어릴 때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니’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고국과 이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m짜리 대작 ‘스테이지다이브’는 1964년 열린 록그룹 롤링 스톤즈의 콘서트를 모티브로 삼았다. 광란의 흥분 상태에 빠진 관람객이 무대로 뛰어들었다가 다시 군중 속에 다이빙해 되돌아온 열광의 순간을 표현했다. 찌그러지거나 뒤틀리고 또 통째로 이어진 듯한 유기적인 풍경은 몹시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뼈아픈 은유로 받아들여진다.

마이어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교훈을 주거나 가르치기보다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며 “특정한 장소를 그렸다기보다 내면의 장소를 그린 것”이라고 답했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움직임’ 또는 ‘속도감’으로 표현해서인지 섬세하고 압도적인 힘이 느껴진다. 컴퓨터 같은 첨단 기기를 적절히 활용해 내면의 정서적 예민성을 캔버스에 옮겼지만 간간이 추상표현주의 화풍에서 볼 수 있는 선과 색의 은근한 맛이 살아았다. 국제 화단에서 그의 그림에 주목하는 이유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