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료 '3대 미스터리' 해운 호황 때 무리한 베팅…외국 선주만 배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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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현대 무너뜨린 용선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벼랑 위로 내몬 요인 중 하나는 비싼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 계약이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해운업 호황일 때 단기 성과에 치중해 높은 용선료를 주고 지나치게 많은 배를 빌려 영업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지적한다. 용선 시점과 규모뿐만 아니라 계약조건도 문제였다. 상당수 용선 계약을 10년 장기로 맺는 바람에 나중에 운임이 떨어졌을 때 대규모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현대상선은 전체 선박 116척 중 83척을 용선으로 쓰고 있다. 작년 매출 5조7000억원 중 2조원가량을 용선료로 썼다. 한진해운도 지난해 매출 7조7000억원 중 약 1조원을 용선료로 사용했다. 두 회사는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를 20~30% 낮추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1) 용선 왜 갑자기 늘렸나 단기실적 급급…배 빌려 쉽게 영업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재무적 부담이 큰 고가 용선계약은 대부분 2006~2011년 맺어졌다. 당시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세계 경제도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배만 있으면 돈을 벌던 시기다. 해운사가 선박을 발주해 건조하는 데는 2년이 걸린다. 두 회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선박을 발주하는 대신 용선을 선택했다.
두 회사가 2006년부터 빌린 배의 대부분은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벌크선이다. 2008년까지 두 선사가 용선으로 조달한 벌크선은 75척에 달한다. 이로 인해 자사선 비중도 50% 이하로 떨어졌다.
축구장 4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18만t급 초대형(케이프사이즈급) 벌크선은 현재 하루 용선료가 1만4000달러(약 160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용선을 늘리기 시작한 2006년엔 10배인 14만달러에 달했다. 주식 투자로 치면 고점에 투자해 상투를 잡은 격이다.
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양대 선사는 해운업황의 순환주기를 근시안적으로 보고 성급하게 용선을 늘렸다”며 “재무적으로 튼튼한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등은 대부분 당시 용선으로 급성장하고 싶은 유혹을 견뎌낸 곳들”이라고 말했다. 고려해운, 흥아해운, 장금상선 등 중견 해운사는 작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2) 가격 비쌀 때 장기계약? "10년 계약하면 할인"에 넘어가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연 10% 고정금리로 받은 셈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장기 용선계약으로 재무적 어려움에 빠진 두 선사를 이렇게 비유했다. 용선계약 기간은 보통 벌크선이 1~3년, 컨테이너선은 5~10년이다. 하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벌크선을 빌리면서 10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배값이 비싸지고 용선료도 더 오른다는 데 ‘베팅’한 것이다. 재무상황이 녹록지 않았던 두 선사는 단기보다 장기로 계약하면 용선료가 더 할인된다는 외국 선주들의 설득에 넘어갔다. 현재 문제가 되는 용선료 계약 대부분이 2006~2011년 맺은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이다.
벌크선 시황을 보여주는 발틱운임지수(BDI)의 연평균치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071, 2008년엔 7170을 기록하다 작년엔 10분의 1 수준인 742로 떨어졌다. 김용건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장기 용선계약에 묶인 비싼 용선료 부담은 실적 개선뿐 아니라 구조조정 노력에도 큰 제약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대형 해운사들이 장기 용선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 김우호 본부장은 “현업 경험이 적은 경영진이 발탁돼 단기 실적 위주로 경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3) 외국선주 22곳은? 조디악 등 '해운계 론스타'가 주도권
현대상선과 용선료 협상을 벌이고 있는 22개 외국 선주 가운데 언론에 공개된 곳은 그리스계 다나오스와 나비오스, 영국계 조디악 등 3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선주는 협상을 시도한다는 것조차 알려지길 꺼리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용선료를 낮춘 것이 드러나면 세계 거래 해운사들이 비슷한 종류의 용선료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조디악은 ‘해운업계의 론스타’로 알려져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어려워진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외환은행을 사들여 높은 수익을 거둔 사모펀드(PEF) 론스타를 닮았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조디악도 1997년 한국 해운사가 어려워진 상황을 틈타 싼값에 배를 사들이고 이를 다시 비싼 값에 빌려줘 높은 수익을 거뒀다.
세계적 벌크선사인 그리스 나비오스도 시황이 어려울 때 꾸준히 중고 선박을 매입해오고 있다. 다나오스는 그리스 최대 컨테이너선사로 현대상선을 통한 매출 비중이 20%가 넘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위기 때마다 외국 해운사에 당하지 말고 국내에서도 용선을 전문으로 하는 해운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현대상선은 전체 선박 116척 중 83척을 용선으로 쓰고 있다. 작년 매출 5조7000억원 중 2조원가량을 용선료로 썼다. 한진해운도 지난해 매출 7조7000억원 중 약 1조원을 용선료로 사용했다. 두 회사는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를 20~30% 낮추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1) 용선 왜 갑자기 늘렸나 단기실적 급급…배 빌려 쉽게 영업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재무적 부담이 큰 고가 용선계약은 대부분 2006~2011년 맺어졌다. 당시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세계 경제도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배만 있으면 돈을 벌던 시기다. 해운사가 선박을 발주해 건조하는 데는 2년이 걸린다. 두 회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선박을 발주하는 대신 용선을 선택했다.
두 회사가 2006년부터 빌린 배의 대부분은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벌크선이다. 2008년까지 두 선사가 용선으로 조달한 벌크선은 75척에 달한다. 이로 인해 자사선 비중도 50% 이하로 떨어졌다.
축구장 4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18만t급 초대형(케이프사이즈급) 벌크선은 현재 하루 용선료가 1만4000달러(약 160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용선을 늘리기 시작한 2006년엔 10배인 14만달러에 달했다. 주식 투자로 치면 고점에 투자해 상투를 잡은 격이다.
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양대 선사는 해운업황의 순환주기를 근시안적으로 보고 성급하게 용선을 늘렸다”며 “재무적으로 튼튼한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등은 대부분 당시 용선으로 급성장하고 싶은 유혹을 견뎌낸 곳들”이라고 말했다. 고려해운, 흥아해운, 장금상선 등 중견 해운사는 작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2) 가격 비쌀 때 장기계약? "10년 계약하면 할인"에 넘어가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연 10% 고정금리로 받은 셈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장기 용선계약으로 재무적 어려움에 빠진 두 선사를 이렇게 비유했다. 용선계약 기간은 보통 벌크선이 1~3년, 컨테이너선은 5~10년이다. 하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벌크선을 빌리면서 10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배값이 비싸지고 용선료도 더 오른다는 데 ‘베팅’한 것이다. 재무상황이 녹록지 않았던 두 선사는 단기보다 장기로 계약하면 용선료가 더 할인된다는 외국 선주들의 설득에 넘어갔다. 현재 문제가 되는 용선료 계약 대부분이 2006~2011년 맺은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이다.
벌크선 시황을 보여주는 발틱운임지수(BDI)의 연평균치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071, 2008년엔 7170을 기록하다 작년엔 10분의 1 수준인 742로 떨어졌다. 김용건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장기 용선계약에 묶인 비싼 용선료 부담은 실적 개선뿐 아니라 구조조정 노력에도 큰 제약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대형 해운사들이 장기 용선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 김우호 본부장은 “현업 경험이 적은 경영진이 발탁돼 단기 실적 위주로 경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3) 외국선주 22곳은? 조디악 등 '해운계 론스타'가 주도권
현대상선과 용선료 협상을 벌이고 있는 22개 외국 선주 가운데 언론에 공개된 곳은 그리스계 다나오스와 나비오스, 영국계 조디악 등 3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선주는 협상을 시도한다는 것조차 알려지길 꺼리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용선료를 낮춘 것이 드러나면 세계 거래 해운사들이 비슷한 종류의 용선료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조디악은 ‘해운업계의 론스타’로 알려져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어려워진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외환은행을 사들여 높은 수익을 거둔 사모펀드(PEF) 론스타를 닮았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조디악도 1997년 한국 해운사가 어려워진 상황을 틈타 싼값에 배를 사들이고 이를 다시 비싼 값에 빌려줘 높은 수익을 거뒀다.
세계적 벌크선사인 그리스 나비오스도 시황이 어려울 때 꾸준히 중고 선박을 매입해오고 있다. 다나오스는 그리스 최대 컨테이너선사로 현대상선을 통한 매출 비중이 20%가 넘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위기 때마다 외국 해운사에 당하지 말고 국내에서도 용선을 전문으로 하는 해운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