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경제가 내수를 중심으로 완만한 개선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비회복 기대가 금리동결의 한 요인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한은은 최근 올 경제성장률을 2.8%로 추정하면서, 성장의 대부분(2.7%)은 내수 기여분이 될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그러나 엊그제 발표된 1분기 경제동향을 보면 한은의 이 같은 판단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분기 민간소비가 늘기는커녕 0.3%(전기 대비)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감소율이 ‘메르스 사태’로 내수가 직격탄을 맞은 작년 2분기와 같은 수준이다. 작년 4분기 소비증가율이 1.4%로 6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뒤 한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에서도 ‘내수발(發) 경기회복’ 기대감을 키워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의 ‘반짝 소비’는 ‘한국판 블프’, 코리아 그랜드세일, K-세일데이 등의 ‘관제 행사’가 줄줄이 이어진 덕분이라는 점이 통계로 입증됐을 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가계의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 오늘의 소비는 내일의 소비를 구축(驅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1분기의 ‘소비 절벽’은 예견된 결과다.

무리한 내수활성화 대책은 ‘세일 피로감’을 부르고 시장의 안정적인 존립을 위협한다. 소비자들은 반복된 할인에 익숙해져 정상 소비를 미루고, ‘좀 기다리면 파격행사가 시작되겠지’라는 심리에 빠지게 된다. 정부가 주도하는 세일행사는 유통회사들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재고 및 가격정책이 정부의 개입으로 일거에 흔들리는 것이다. 당장은 매출이 오르겠지만, 시장의 예측가능성이 크게 낮아져 경영리스크를 오히려 높인다.

유일호 부총리는 보름 전 뉴욕에서 연 한국 경제 설명회(IR)에서 “소비촉진을 위한 인센티브와 ‘실탄’이 충분하다”며 내수 활성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반짝 효과’에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경기 진폭을 키우고, 왜곡된 데이터에 바탕해 정책타이밍을 그르치는 화만 자초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연중세일!’을 외쳐댈 것인가.